오래전 직장 생활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무더운 여름 서울역 근처에 있는 거래처 건설회사에 서류 전달 중에 발생한 일이다. 우편이나 메일로 보내도 되지만 굳이 번거롭게 직접 전달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담당자에게 얼굴 도장을 한번이도 더 찍기 위한부분이다.
무척 더운 날씨라 잠시만 어에컨과 멀어리면 특정 부분에 땀이 차올라 후딱 서류만 전달하고 오면되는 간단한 업무다. 조금만
시간이 길어지면 민망한 부위에 땀이 고여 좋은 인상을 줄 수는 없다.
마음 같아서는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가고 싶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거래처 방문시 있을수 없는 일이다.
업체를 자주 방문하다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 경비 아저씨이다. 물론 요즘은 자동화되어 경비 아저씨가 많이 줄어든
현실이 조금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경비아저씨가 마치 방문한 회사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유독 원칙과 날이 서있는 경비 아저씨는 대부분
오래 근무하지는 못하는 듯 하다.
깐깐한 경비아저씨들은 외부 손님을 마치 불편한 아들을 대하듯 맞이한다. 잡상인일 경우 욕만 하지 않았지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어디서 오셨죠?"
방문 예약이라도 하지 않으면 회초리를 꺼낼 기세다.
아니나 다를까 거래처 직원들도 귀여운 얼굴을 한 알파카처럼 입에서는 침을 거세게 쏟아낸다.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으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지긋하신 옆집 아저씨 같은 경비아저씨는 참으로 다정하다. 긴장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녹아내려 담당자와 대화도
부드럽게 이어지는것 같다.
"어떻게 오셨어요~"
경비아저씨의 다정한 한마디에 왠지 기분이 좋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방문한 건설회사는 서울 중앙에 위치한 고지식한 스타일에 회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비 아저씨의 부드러움은 없다.
방문한 사무실 분위기와 인테리어는 직원을 감시하는 듯한 분위기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몰라도 그때 당시에 느낀 첫
느낌은 마치 군대 관물대 정리하듯 정돈된 사무실 내부였다.
평 뚫린 공간에 파티션은 하나도 없이 타 부서도 모두 한눈에 들어 오늘 사막 한 가운데 책상만 놓인 환경이농땡이라도
피우는걸 그냥 둘수 없는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직장 생활은 굉장히 불편할것 같다. 어차피 난 거래처니까 상관없지만
오늘 서류 배달만 후다닥 하고 도망간
생각뿐이었다.
사물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여직원들의 통일되고 딱딱한 유니폼이 사라졌던 긴장감이 다시 올라온다.
사무실로 들어 가기 위해서는 출입열쇄가 있어야 한다. 잡상인은 사절이라는 암묵적인 신호다. 마침 나오는 직원이 있어 도둑고양이
처럼 후다닥 들어간다.
담당자의 부서는 천정에 달려있는 팻말을 보고 찾았지만 어느 책상이 담당자 자리인지 알 수가 없다.
책상에 직원 이름도 안 쓰여있고 때마침
부서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부서장에게 물어보자니 근처에 오지 말라는듯 흥분된 상태이다.
똥개도 자기 구역에서는 어깨를 피고 다닌다던데 지금 난 사막위에 홀로 서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연결음이 다 지나도 받지를 않는다. 더욱 초조해진다.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하나 둘 시선이 나에게
꽂히고 있다. 이런 식으로 관심받고 싶지는 않은데 뻘쭘하다.
뻘쭘한 시간이 점점 늘어 날수로 땀이 솟아난다. 잘 보이지 않던 곁땀이 겨터파크 오픈 직전이다.
몇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담당자와 연결이 되었다.
"대리님 어디에 계세요? 사무실에 계신가요?"
수화기 넘어로 들리는 소리가 아마도 현장에 있는 듯 하다.
"어디시라고요?"
나는 큰소리로 전화에 외친다.
"대리님 사무실에 왔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모든 직원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모리털이 쭈볏쭈볏 선다.
그제서야 대리님은 자기 자리 앞에 서류를 놓고 가라고 이야기 한다.
"제 앞자리에 박스테이프통에 두고 가세요"
그러곤 휙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한참을 찾았다. 박스테이프 통을..
아무리 찾아도 상자 비슷하게 없다. 어쩔 수 없어 대리님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대리님 박스테이프상자가 없어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주변 소음과 섞여 들려온다.
"그냥 박스테이프에 놓고 가세요"
잡음과 함께 뚝 끊어졌다.
또다시 전화했다간 다음 만남은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든 대리님 자리를 찾아서 두고 가야 한다.
이 정도의 시선 강탈이면 다른 직원들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을 법도 한데 미어캣처럼
다들 구경만 하고 있다.
드디어 대리님 부서에 직원으로 보이는 여직원 분이 오셨다.
마치 구세주 같았다. 기쁜 마음으로
물어봤다.
"여기 대리님 박스테이프 통이 어디 있나요?"
여직원이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뭐라고요?"
"아니 대리님이랑 통화했는데 대리님 앞에 박스테이프 통에 놓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야 여직원이 이해했는지
"그냥 저 주세요."
그리고 한숨을 푹 쉬고 자리를 떠났다.
서류를 건네주면서 여직원의 한숨 쉰 이유를 순간 알게 되었다.
여직원 유니폼이 달려있던 명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박 스 테 파 노-
난 20분 동안 뭘 한 걸까?
왜 박스테이프통 이라는 단어에 꼽혀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0.1초 만에 민망함과 창피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끈하게 몰려온다.
박스테이프 통이 아니라 박스테파노씨에게 전달해 주라는 말을 오해한 일이다. 누가 이름이 박스테파노라고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서울역 근처에 가면 생각나는 에피소드이다.
박스테파노씨 잘 계시죠?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