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어떻게 1달러 가치를 지키느냐'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 마치 가문마다 다른 가업이 있듯, 스테이블코인도 네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은행 금고에 진짜 달러나 국채를 쌓아두고 그만큼만 코인을 찍어내는 법정화폐 담보형인데, 테더(USDT, Tether)와 USDC(USD Coin)가 바로 이 방식이다. 가상자산 담보형은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되, 가격이 요동칠 걸 대비해 1달러어치보다 더 많이 맡겨두는 과담보 방식을 쓴다.
알고리즘형은 담보 없이 수학 공식이나 파생상품으로 가격을 조절하는데, 요즘은 고수익을 주는 USDe(Ethena USD) 같은 합성 달러가 인기다. 실물자산 연동형은 미국 국채 이자를 토큰에 담아서 그냥 들고만 있어도 수익이 생기는 구조다. 이 네 가지 중에서 FDUSD(First Digital USD)는 가장 기본인 법정화폐 담보형이지만, 독특한 사연을 갖고 태어났다.
2023년 6월, 홍콩의 퍼스트 디지털 그룹이 FDUSD를 세상에 내놓았다. 때마침 바이낸스가 밀던 BUSD(Binance USD)가 규제 문제로 접혀버리면서 갑자기 공석이 생겼고, FDUSD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홍콩 금융당국의 까다로운 규제를 다 통과하고 나온 코인이라는 점에서 '아시아판 제도권 코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시가총액만 보면 FDUSD는 26억~30억 달러로 전체 순위 10위 밖이다. 하지만 숫자에 속으면 안 된다. 바이낸스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사고팔 때 기축통화로 쓰이다 보니 하루 거래량이 수십억 달러를 오간다. 시총은 작아도 실전에서는 엄청나게 굴러다니는 '일 잘하는 코인'인 셈이다.
누가 FDUSD를 쓸까? 바이낸스에서 자주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은 수수료 할인을 받으려고 쓴다. 아시아 기관투자자들은 홍콩 법의 보호막이 있으니 안심하고 포트폴리오에 넣는다. 차익거래 전문가들은 테더와 FDUSD 사이 미세한 가격 차이를 노리고 왔다 갔다 하며 수익을 챙긴다. 각자 쓰는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바이낸스라는 거대 거래소 안에서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FDUSD에게는 두 가지 큰 고비가 기다린다.
첫 번째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New York Stock Exchange) 상장이다. 퍼스트 디지털 그룹이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기업인수목적회사)를 통해 증시에 입성하려는데, 성공하면 스테이블코인 회사 중 최초로 상장사 타이틀을 달게 된다. 상장은 단순히 돈 모으기가 아니라 '우리 장부 다 공개하고 감사받겠습니다'라는 신뢰의 선언이다.
두 번째 고비는 바로 코앞이다. 1월 29일부터 바이낸스가 FDUSD 거래 수수료 면제 혜택 일부를 끊는다. 그동안 '수수료 공짜'라는 당근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는데, 이제 그 당근이 사라진다. 혜택 없이도 트레이더들이 계속 FDUSD를 선택할지가 진짜 실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FDUSD의 전략 중 흥미로운 부분은 여러 블록체인에 동시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BNB 체인(BNB Chain)은 본거지로 바이낸스 생태계와 연결된다. 이더리움(ETH, Ethereum)은 기관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는 금고 역할을 한다. 최근엔 톤 네트워크(TON, The Open Network)에도 들어가서 텔레그램 쓰는 9억 명한테 송금 수단으로 다가간다.
솔라나(Solana)와 수이(Sui)처럼 빠른 블록체인에도 올라가서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 금융상품들과 연결된다. 각 블록체인마다 장점이 다르니까 상황에 맞춰 쓰라는 전략이다. BNB 체인에서는 거래소 유동성을, 이더리움에서는 기관 신뢰를, 톤에서는 대중 접근성을, 솔라나에서는 속도를 각각 챙기는 식이다.
FDUSD를 보면 홍콩이라는 위치가 얼마나 전략적인지 보인다. 중국 본토는 암호화폐를 강하게 규제하지만, 홍콩은 아시아 디지털 자산 중심지가 되려고 문을 활짝 열었다. FDUSD는 딱 그 틈새에 자리 잡아서 '규제는 지키되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1달러만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테더는 압도적인 덩치와 거래량으로, USDC는 투명한 회계와 규제 준수로, PYUSD(PayPal USD)는 페이팔이라는 결제 거인의 네트워크로 각자 성을 쌓았다. FDUSD는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와의 끈끈한 관계, 홍콩 금융당국의 인증서, 그리고 여러 블록체인을 넘나드는 유연함으로 맞선다.
2026년 들어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히 코인 거래할 때만 쓰는 도구가 아니라 금융 인프라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FDUSD가 수수료 혜택 없이도 거래량을 지키고, 증권거래소 상장으로 제도권 문패를 달고, 톤 네트워크로 일반인들 결제 시장까지 파고든다면, 아시아발 스테이블코인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시총 순위보다 실제로 얼마나 쓰이는지가 중요한 지금, FDUSD의 행보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얼마나 다채로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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