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은행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둘 다 고객의 돈을 다룬다. 그러나 그 돈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어디서 수익을 내는지,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완전히 다른 구조 위에 서 있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더 나은 은행 모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구조적 차이에 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지급 준비율에서 시작된다. 전통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의 일부, 통상 10% 내외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대출이나 투자에 활용하는 부분 지급 준비제(Fractional Reserve)로 운영된다. 모든 고객이 동시에 인출을 요청하면 은행은 구조적으로 버틸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된 코인 총량에 해당하는 자산을 100% 이상 국채와 현금으로 보유해야 하는 전액 준비제(Full Reserve) 체계를 따른다. 이론적으로 뱅크런이 발생해도 모든 고객에게 원금을 돌려줄 수 있는 구조다.
수익 구조도 근본부터 다르다. 전통 은행의 핵심 수익원은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 사이의 차이, 즉 예대마진이다. 대출을 더 많이, 더 비싸게 내줄수록 이익이 커지는 모델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대출을 하지 않는다. 대신 준비금으로 보유한 미국 국채와 레포(Repo) 운용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이 사실상 전부다. 위험한 자산에 베팅하지 않아도 거대한 자금(Float)에 대한 이자가 꾸준히 쌓인다.
비용 구조의 차이는 더 극적이다. 전통 은행은 전국 단위의 지점망, 수만 명의 인력, 부실 대출에 대비한 대손 충당금을 유지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주요 비용은 IT 인프라와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보안 감사다. 물리적 점포도, 대규모 인력도, 신용 리스크도 없다. 고금리 환경에서는 앉아서 막대한 국채 이자를 수취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리스크 없는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산 속도 역시 두 모델을 가르는 핵심 변수다. 전통 은행 간 거래는 T+1에서 T+3, 즉 거래 완료까지 최대 3영업일이 소요된다.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위에서 온체인 정산(On-chain Settlement)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분, 경우에 따라 수초 안에 완결된다. 글로벌 공급망을 운영하는 기업이나 국경을 넘는 결제가 잦은 사업자에게 이 속도 차이는 비용과 직결된다.
다만 전액 준비제는 자본 효율성(Capital Efficiency) 측면에서 뚜렷한 한계를 갖는다. 준비금으로 100% 자산을 묶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같은 규모의 자본으로 전통 은행보다 훨씬 적은 수익을 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26년 현재 발행사들은 규제 기준보다 25%포인트 더 많은 자산, 즉 102105%의 오버콜라터럴(Over-collateralization)을 쌓아 기관 투자자로부터 저금리 자금을 조달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신뢰도를 수치로 높여 조달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발행사들은 준비금으로 보유한 국채를 다시 담보로 활용해 온체인에서 유동성을 공급받는 재무 기법도 적용하고 있다. 자산을 잠가두면서도 그 자산을 다시 활용하는 구조다. 규제 테두리 안에서 자본 효율성을 끌어올리려는 치열한 시도다.
전통 은행이 신용을 창조한다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유동성을 전달한다. 대출 기능이 빠진 자리에 투명성과 안전성이 들어선 구조다. 두 모델 중 어느 것이 우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 안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제대로 읽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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