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사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을 때 가장 강력한 시너지를 만드는 지점은 공급망 금융(Supply Chain Finance, SCF)이다. 납품업체의 자금난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 정산 지연이라는 오랜 갈등 구조를 금융 기술로 재설계하는 지점이다.
전통적인 유통 환경에서 납품업체는 물건을 납품하고도 대금을 받기까지 30일에서 90일을 기다린다. 유통사는 대금 지급을 늦출수록 현금 보유량이 늘어나 유리하지만, 납품업체는 자금이 묶여 원자재 구매나 임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높은 이자의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을 이용하게 되고, 그 비용은 다시 납품 단가에 반영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공급망 금융은 이 상충 구조를 기술적으로 해결한다. 유통사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되면, 납품업체가 검수를 완료하는 즉시 현금 대신 자사 발행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 납품업체는 90일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코인을 받고, 유통사는 코인 담보로 확보한 현금을 국채에 투자해 이자 수익을 만든다. 이 구조에서 핵심은 발생한 이자의 일부를 코인을 보유한 납품업체에게 리워드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납품업체가 유통사의 물류 인프라나 창고 서비스를 이용할 때 별도의 현금 이체 없이 받은 코인으로 즉시 결제하게 하는 상계 처리(Netting) 구조까지 더하면 관리 비용은 사실상 0에 가까워진다. 송금 수수료도, 환전 과정도, 정산 대기 시간도 사라진다.
유통사는 납품업체에게 "현금으로 90일 뒤에 받을래, 아니면 우리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금 즉시 받고 보유 기간 동안 국채 이자만큼 보너스를 받을래?"라는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업체는 후자를 선택하게 되고, 유통사의 준비금 규모는 자연스럽게 커진다.
2026년 현재 고도화된 유통사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아직 지급 기일이 남은 매출채권 자체를 토큰화(e-Note)해 발행하는 방식이다. 납품업체는 토큰화된 채권을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할인된 가격에 즉시 매각(Factoring)해 현금화할 수 있다. 은행이라는 중간 매개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납품업체는 더 낮은 할인율, 즉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고, 유통사는 공급망 전체의 재무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채권의 토큰화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금융 중개 비용을 구조적으로 제거하는 설계다. 전통 금융에서는 은행이 채권을 매입하고 신용 리스크를 부담하며 마진을 챙긴다. 토큰 기반 구조에서는 시장 참여자가 직접 채권을 거래하고, 스마트 컨트랙트가 정산을 자동 실행한다. 중개 수수료가 줄어든 만큼 납품업체의 실질 조달 비용이 낮아진다.
공급망 금융과 스테이블코인의 결합은 유통사가 공급망의 '갑'에서 '금융 파트너'로 역할을 전환하는 과정이다. 대금 지급 시기를 무기 삼아 협상력을 행사하던 구조에서, 즉시 정산과 이자 공유를 통해 상생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ESG 경영의 사회적 가치(Social) 측면에서도, 지배구조(Governance) 투명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준비금 규모가 커질수록 채권 운용 수익도 커지고, 그 수익을 납품업체와 나눌 여력도 생긴다. 결국 유통사는 구매자인 동시에 금융 플랫폼이 되고, 납품업체는 자금난에서 벗어나며, 공급망 전체는 더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정산 지연이라는 구조적 갈등이 금융 기술을 통해 이자 공유라는 협력 모델로 전환되는 지점, 스테이블코인이 가장 실용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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