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Y 멜론이 스테이블 코인의 파수꾼이 된 사정

by 심준규 Jace Shim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1조 원의 현금을 조달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발행사 대표가 그 돈을 임의로 꺼내 쓸 수 있다면, 해당 코인은 언제든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이 구조적 위험을 막는 핵심 장치가 바로 커스터디(Custody), 즉 수탁이다.


스테이블 코인 생태계에서 발행사는 지시자일 뿐, 보관자가 아니다. 발행사는 "코인 100만 개를 발행했으니 그만큼의 자금으로 국채를 매입하라"고 지시만 내린다. 실제 자금을 쥐고 있는 것은 BNY 멜론, 스테이트 스트리트 같은 수탁 은행이며, 발행사의 지시가 사전에 규정된 가이드라인에 부합할 때만 집행된다.


이는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직무 분리(Segregation of Duties) 원칙을 금융 인프라로 구현한 구조다. 권한과 보관을 분리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단독으로 자금을 남용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커스터디는 단순한 보관 서비스가 아니라 신뢰를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장치다.


법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수탁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일반적인 포인트나 상품권은 발행사가 파산하면 그 가치가 채권단에게 귀속된다. 반면 제대로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의 준비금은 수탁 은행 내 별도 신탁 계좌에 보관되기 때문에, 발행사 파산 시에도 법적으로 코인 보유자에게 우선 귀속된다.


이를 파산 절연(Bankruptcy Remoteness)이라 부른다. 준비금이 발행사의 자산이 아닌 신탁 자산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발행사의 재무 상태와 무관하게 코인 보유자의 권리가 보호된다. 이 구조가 스테이블 코인을 단순한 디지털 포인트와 구별 짓는 법적 기반이다.


기술 구현 방식도 진화했다. 과거의 커스터디가 장부 기록 중심이었다면, 2026년 현재는 API 실시간 연동이 핵심이다. 발행사가 코인 발행(Mint)을 시도하면 수탁 은행 시스템이 즉시 "해당 금액의 현금이 실제로 입금되었는가"를 자동으로 검증하고 승인 또는 거절을 결정한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기술적 내부 통제가 완성된 셈이다. 인간의 판단이나 재량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운용자의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커스터디 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스테이블 코인의 신뢰도는 발행사의 평판이 아니라 시스템의 설계에 의해 결정된다.


실무적 시사점은 명확하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준비하는 사업자가 가장 먼저 협상해야 할 상대는 블록체인 개발사가 아니라 대형 수탁 은행이다. 어느 기관이 준비금을 맡느냐가 곧 그 코인의 신용 등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커스터디는 스테이블 코인 생태계에서 보이지 않는 인프라처럼 작동한다. 사용자는 수탁 구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지만, 그 구조가 무너지는 순간 코인 전체가 흔들린다. 발행사의 손을 묶는 것이 역설적으로 코인의 가치를 지키는 방식이며, 커스터디는 바로 그 묶음의 실체다.


핵심 키워드: 커스터디(Custody·수탁), 수탁 은행, 파산 절연(Bankruptcy Remoteness), 직무 분리(Segregation of Duties), 별도 신탁 계좌, BNY 멜론, 발행(Mint), API 실시간 연동, 준비금(Reserve), 기술적 내부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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