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9)20230820
나는 25 즈음에
한 특허사무소를 들어갔다.
연봉협상은 3800으로 했는데
막상 들어가고 보니
실 수령액은 수습 3개월 간 80프로 지급에
면접서 회사가 제시한 3800은 영혼까지
탈탈 털어 기재한 것이어서
180만원 가량 찍혔다.
그 때 내가 겪었던 어려움은
매일 9시 출근에 8시 정도까지
야근을 반복하고
나의 전임자가 회사에 너무 넌덜머리가
난 상태여서 제대로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다.
뭐랄까
인수인계를 안하는 건 아닌데
받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가르쳐주기 싫음과
눈치보게 만드는 스탠스
그리고 그 전임자의 회사와 이미 정뗐고
빨리 받을거만 받고 나가고 싶다는 태도
거기에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도 들어온 지 2개월 정도밖에
안되서 (그러나 그 친구는 어쨋든 자신을 갈아넣어서)
나보다 더 오래 다녔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일이 많다고 위쪽에 말해보자고 했는데
그 친구는 거부했다.
영어에 특허업계 특유의 한글이지만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보고서 내용을
업무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결국 2개월 가량을 미처
버티지 못한 채 퇴사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 기간 나는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러 사무실 복귀 전까지
항상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위안 삼으며
회사 주변을 산책했다
당시 주말에 지하철 역 등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하호호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다른 세상의 외계생명체를 본 것 마냥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했다
우울증이었다.
특허사무소를 나오고
다음 직장은 완전한 사무직은 아니었고
서비스업이 반정도 포함되어 있는
직무를 2년 정도 했다.
그 업무는 굉장히 다이나믹했는데
힘든 것은 여전했고
오히려 더 힘들었을수도 있지만
우울증이랑은 달랐다.
그 직무는 내가 다양한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벅차기도 했고
너무 자랑스럽고 자부심이 들고
내 일이라는 생각도 시시각각 하였다.
물론 다른 종류의 힘듦은 역시
있는 일이었지만
그 직장과 직무를 되돌아봤을 때
힘들긴 무진장 힘들었고,
그럼에도 애증이 강하게 남아있는 일이었다.
지금의 일을 하며 나는 성격이나 취향
혹은 행동양식 등이 꽤 변한 부분이 있다.
숫자를 싫어하고 공포감이 있던 내가
어느정도 숫자를 빨리 정리/계산하는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튀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고
너무 여성스러운 것을 지양하게 되었고
단순함을 추구하고 실용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나는 장면장면들은
몇 년 전에 한참 만나던 오빠랑
같이 술 마시고 회사의 누군가때문에 힘들어
길에서 울었던 것
영화모임에 가서도 항상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회사때문에 힘들다/퇴사하고 싶다 등의
이야기를 해왔었다.
친구를 몇 년전에 만났을 때도
나는 거칠어진 얼굴로 회사의 누구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나눴었다
전남친을 만날 때에도
회사의 빌런같이 나를 괴롭히는 몇몇 이야기를 하며
고충을 토로했고
업무적으로 (처음 접하는 문제해결)
해결이 잘 안되서
주말에도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공부를 하거나
담당자들의 전화로 욕을 듣기도 하고
혹은 단순 업무통화를 하기도 하며
전전긍긍했던 시절들이 떠오른다
그 때도 여름이었다
작년여름이었는지
재작년 여름이었는지
또 지금의 회사를 떠올리면
한 달에 한 번 새벽에 출근을 해야 할 때면
하루건 이틀이건 전부터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새벽출근을 할 때는 커피를 여섯포씩 타서
화장을 진하게 하고 새벽길을 나섰던 것이
떠오른다
그 때는 나의 앞 길에는 내 회사밖에 없었고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했지만
다른 길은 생각도 못해봤기에
그만큼 더 힘들어했고
더 열심히 극복해가며 다니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5년을 넘게 다녔으니
울기싫다
더 이상
이 회사 때문에
내가 회사를 5년여 다니고 그만다닌다는
이미 정해진 사실때문에
나는 가뜩이나 체력도 약한데
한 번 울면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는 성격인데
괜히 울어서 자꾸 정해진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내 체력을 축내고 싶지 않다
5년을 추모하기엔
나는 이미 많이 울었다.
그만하면 됐다.
안해보고 그만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충분히 나는 이 여름을
2023년의 여름을
누구보다 타는듯이
작열하며 뜨겁게 아프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