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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Oct 23. 2017

나를 충전하는 법에 관하여

소비, 그리고 생산

"쉬었다 하자."

쉬는 시간이다. 남자는 핸드폰 보관함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키고 방진복을 벗기 위해 탈의실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방진복을 벗고 담배를 피우고 나면 쉬는 시간은 거의 끝나기 때문에 서둘러야했다.

사실 연락이 올 사람은 없었다. 여자친구도 없었고, 친구들도 각자 사회생활을 하느라 바빴다. 게다가 시간은 자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괜시리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카톡이 하나 와 있었다. 어머니에게.

'아들. 잘 지내고 있니. 혹시 머니필요하니. 엄마가 찾아가도 될까.'

마침 남자는 월급을 며칠 앞 두고 거의 돈이 떨어진 상태였다. 요새 닭강정이 매우 먹고 싶었으나, 닭강정은 커녕 닭껍질도 살 형편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 

'네. 오세요. 내일 아침에 일 끝나고 쉬는 날이니까 오셔도 되요. 다만 오시면 전화 한 통 해주세요. 아마 자고 있을거니까.'

'알았어. 아들. 나는 4시 30분에 일이 끝나.'

남자는 핸드폰을 덮고 방진복을 서둘러 갈아 입고 이미 저 멀리 있는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다음날 저녁쯤에 어머니가 찾아 왔다. 남자는 자다가 일어나 비몽사몽 어머니를 맞았다. 어머니가 오신다는 이야기에 방을 깔끔하게 정리를 해둔 상태였고, 어머니는 깔끔하게 잘 해놨네-. 하며 감탄하신 다음,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남자는 옷을 갈아입고 어머니를 따라 길을 나섰다.


남자와 어머니는 생선구이 집에서 식사를 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와 갈치를 식탁에 두고, 어머니와 남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가 괜찮다. 위험한 일도 하지 않는다. 비록 주야간을 번갈아가면서 근무하지만 그만큼 돈을 많이 준다. 

어머니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응.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열심히 살아.

네.

그런데 아들. 여자친구는 아직 없고? 너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됐잖아.

아. 어머니. 제발. 

이제 엄마도 손자 재롱도 보고 싶고 그래. 너도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하면 행복할꺼야.

남자는 이미 다 발라먹은 생선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렸다. 남자도 좋은 여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이 없었다. 주야간을 돌아가며 근무하는 회사에, 남들보다 가진것도 없고 특출난 재주도 없는 서른살의 남자를 누가 좋아해줄까.

남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자신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느 경지까지는 이르러야 만족하는 성격에 그림과 글을 어느 정도 해냈다. 카페일을 삼 년 하며 앞으로 개인카페를 차릴 준비도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사실은 그동안의 사랑에 너무 지친것이 컸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대충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네. 어머니. 일단 여자친구나 만들어야죠.

여자친구를 만들 마음도 없으면서. 아니. 자신도 없으면서.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남자에게 용돈으로 십만원을 주었다. 남자는 거절할 생각도 하지 않고 덥석 받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래. 아들. 맛있는거 많이 사먹고. 나는 아들을 늘 응원해. 열심히 살아.

네. 어머니. 열심히 할께요.

어머니는 차를 타고 부천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바라보다가, 두둑해진 지갑의 무게를 느끼며 원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 날, 남자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돈도 생겼다. 어머니 말대로 맛있는것(닭강정)도 사먹었다. 일도 바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온 몸이 피곤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 오늘은 잔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일찍 퇴근해 집에 도착했다.


무엇이 부족한걸까. 여자친구? 아니다. 여자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그것이 뭐랄까. 절실한건 아니었다. 있으면 좋고, 아님 말고. 

남자는 어제 닭강정과 같이 먹기 위해 산 다섯 개의 캔맥주 중에 제일 좋아하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냉장고에서 꺼내마시며 만화를 보았다.

만화를 보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느꼈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된 소설 파일을 열고, 몇 줄을 써 내려갔다.


앙상하게 철골이 드러난 도심의 건물 사이로 어둠이 내린다. 어둠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석양을 잡아먹으며 하늘을 덮어갔다. 결국 어둠이 하늘 끝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던 보랏빛 하늘의 마지막 한 조각을 먹어치우고서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나는 세상을 뒤덮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숨을 죽였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이 위험한 행동임을 몇 번의 위험천만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탓이었다. 나는 창문 밑으로 몸을 숙이고 접근한 후에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게끔, 천천히 창문으로 기어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커튼을 치고, 더러운 이불 뭉치 속으로 몸을 대충 구겨 넣었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졌고, 피로가 날아갔다. 그래. 맞아. 창작을 하지 않고 있었어.


소비와 생산. 그것이 남자를 다시 힘을 내게 했다. 기분을 좋게 했고, 다시 살아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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