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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r 05. 2018

일상 - 2018.03.04

결혼은 무엇인가.

간만에 일이 한가해졌다. 오늘은 잔업을 하지 않고, 5시 30분에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는 안도했다.

오늘은 남자의 누나와, 예비 매형이 남자를 찾아오기로 한 날이다.


남자는 누나가 있었다. 남자보다 세 살이 많은 누나였는데, 늘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던 누나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음이 가는 한 이성을 만나 하나의 가정을 꾸려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남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곧 일어날 일에 대해서 가끔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보다 일이 조금 늦어지게 되어 남자는 여섯 시에 퇴근을 하게 되었다. 남자는 동료들과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운 후에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고 집 앞으로 향했다.


집 앞 공영주차장에 도착하니 매형의 차가 보였다. 남자는 매형의 차 옆에 차를 주차하고 창문을 열었다. 남자의 차를 발견한 누나와 매형이 창문을 열고 인사를 했고, 남자도 인사를 드리고는 차를 주차하고 매형의 차에 옮겨 탔다. 운전대는 매형이 잡았다.


남자와 누나, 매형의 일행은 오리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에 도착했다. 매형은 능숙한 주차솜씨로 차를 주차했고 일행은 차에서 내려 음식점에 들어섰다. 누나가 음식점에 예약을 했는지 테이블에 음식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넓다란 검정색의 냄비에 갖가지 음식들이 가득했다. 여러가지 버섯들과(남자는 버섯을 꽤나 좋아했지만 처음보는 버섯들도 제법 있었다) 커다란 오리, 그리고 테이블에 놓여진 동충하초와 일행이 자리에 앉자마자 날라온 잎과 줄기, 뿌리가 그대로 살아있는 인삼까지. 몸에 좋을 것이 분명한 음식들이 테이블에 가득 놓여있다.

"잭 킴. 많이 먹어."

누나가 남자에게 음식을 권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놓여진 자연산 인삼을 매형과 누나에게 먼저 먹으라고 밀어주었다.

아마 이 음식들은 남자가 요새 쉬지도 않고 회사 생활을 하여 지쳤다는 소식을 들은 누나의 배려일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는 부천에서 시흥까지 오느라 고생한 매형과 누나를 먼저 챙겨주고 싶었다.


버섯오리탕(음식의 자세한 이름을 몰라 대충 명명한다)은 매우 괜찮은 음식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갖가지 약재가 풍부하게 들어간 국물은 초록색과 갈색을 섞은 색깔을 띄었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을 때 글쎄.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지친 남자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음식이다.

푹삶은 오리는 담백했고, 중간중간에 먹는 버섯들과 인삼, 도라지등은 아삭한 식감과 함께 약간의 떫은 맛으로 약간 남은 오리의 기름기를 제거해주었다. 만족스러웠다.

남자는 음식을 먹으며 매형과 술잔을 나누었다. 남자는 매형이 고마웠다. 남자를 만나기 위해 휴일의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곳. 시흥으로 오신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누나를 좋아해주고, 아껴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자와 누나, 매형은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가 시흥에 언제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회사를 다니고 회사의 비전을 이야기 하고...

술잔이 꽤나 돌았다. 이 자리에 있는 일행 모두가 내일 출근을 해야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기에, 남자는 단골 카페에 누나와 매형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카페 근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일행은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마침 비가 왔기에 우리는 차에 비치되어 있던 우산 두 개를 꺼내 썼다. 남자는 혼자 우산을 쓰고, 둘을 안내하며 앞장섰다. 앞장을 서던 남자는 둘이 잘 따라오는지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는데 매형이 누나의 어깨를 감싸며 비를 맞지 않게 조심스럽게 감싸주는 모습과, 매형의 팔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짓는 누나의 표정을 보았다. 


카페에 도착한 일행은 따뜻한 얼그레이, 차가운 얼그레이, 차가운 녹차 라떼와 딸기 타르트,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잠시 후에 테이블에 음료와 케이크들이 줄지었고 일행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의 흐름은 남자가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꿈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곧 있을 누나와 매형의 이야기로 흘러갔고, 매형의 형님과 형수님(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매형의 형님의 와이프)의 이야기로, 마지막에는 남자의 여자친구로 흘러갔다.

"그래. 잭 킴은 여자친구를 언제쯤 만들꺼야?"

누나의 매서운 공격이 들어왔다.

잭 킴은 회피했다!

그러나 한 번 회피했다고 멈출 대화 주제가 아니었다.

남자도 안다. 남자를 인신공격하기 위한 대화 주제가 아님을. 그러나 남자는 마주 보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여자친구 좋지. 그러나 시흥에 내려와 혼자 원룸에 살며 공장에서 품질관리를 하며, 일을 마치고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말수 적고, 내향적인 성격에 재미도 없는 남자와 만날 여자가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게다가 늘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기에, 누군가를 만날 시간도 없었다. 그것을 이겨내보기 위해 일명 데이트 앱을 설치해 꽤나 적지 않은 돈(부끄럽지만 3만원 정도를 투자했다)을 투자했으나, 남자에게는 어느 누구도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돈은 돈대로 쓰고, 남자의 자존심은 상할대로 상했다.

게다가 남자는 여자를 만날 때 제법 까다로운 편이었다. 남자는 목표가 높은 편이라 열심히 살았고, 그에 부합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부합되어 남자는 여자친구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회피하는 수 밖에.


시간이 늦기 전에 일행은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와 매형이 카페의 음료와 케이크를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아서, 남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형의 차는 남자의 집 앞에 남자를 내려다주고 길을 떠났다. 내릴때 다시 한 번 매형과 누나의 다정한 모습을 본 남자는 결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기에는 힘든 상황이지만, 언젠가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난다면. 누군가를 만나 어깨를 내어주고 누군가의 머리가 가슴에 닿는다면. 결혼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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