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쪽짜리 휴식
오늘은 오전 근무만 있는 날이었다. 오전 08시 30분에 출근한 남자는 12시 반이 퇴근했다.
무엇을 할까. 남자는 차를 운전하며 기대에 가득 찼다.
간만에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겠다. 직원 식당의 밥은 나쁘지 않았지만 거의 같은 메뉴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영양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남자에게는 가끔 더욱 더 좋은 음식이 필요한 것이었다.
미술관을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 남자에게는 차가 있고. 주말이다. 월급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서울 근교의 미술관을 찾아갈 정도의 돈은 있었다. 게다가 오전 근무만을 마친 탓에 시간도 넉넉했다. 즉.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무엇을 할까. 집에 도착한 남자는 방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4월이 코 앞인 날씨가 조그마한 창문으로 타고 들어왔다. 겨울의 자취가 약간 남은 서늘함과 완연한 봄의 따뜻함이 담긴 햇살과 공기가. 기분이 좋았다.
남자는 눈을 떴다. 핸드폰을 충전할 요량으로 잠시 누워 있었는데.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남자는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오후 06시.
잠시 괴로워 했다. 간만의 주말의 오후가 순식간에 날아간 것이 너무도 아까웠다. 그러나 지난 과거에 연연해봤자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남자의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곧 괴로움을 털어냈다. 뭐. 내 몸이 그만큼 지쳤었나보지 뭐. 잘잤다.
남자는 다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샤워를 마치고 단골카페로 향했다.
남자는 요새 카페에 자주 들렸다. 카페에 들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남자의 최근 취미였고, 소소한 행복이었다. 남자는 주문한 커피와 자몽 타르트를 그렸다.
남자는 노트8의 펜기능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새로운 기능을 발견했는데 남자가 평소에 쓰던 붓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음. 좋아. 좋아.
때로는 연필처럼. 때로는 마커처럼. 때로는 붓처럼.
남자의 의지와 시간만 있으면, 생각보다 남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자는 그림을 다 그리고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집에 돌아와 이불에 눕자 허무함을 느꼈다. 반 쪽짜리 휴식이 이렇게 끝났구나.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이고.
그림을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썼으나. 무언가 허무했다. 남자는 허무함의 이유를 알지 못한채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