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을 살때 무엇을 보는가.
남자는 '멀라이언 스노우볼'을 쓰고 있었다. 어느덧 남자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짧은 단편 소설을 스무 편 이상 썼지만, 이제는 장편을 하나 완성하고 싶었다.
장편은 단편과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발단-전개-절정-결말의 구조는 같았으나, 문장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발단 안에도 발단-전개-절정-결말의 또 다른 구조가 이어졌다. 남자가 장편을 쓰면서 깨달은 것은 단편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면, 장편은 수 많은 세계를 이어 또 다른 하나의 큰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었다. 세계를 엮는 것. 아름다운 일이었다.
어느덧 '멀라이언 스노우볼'의 완성이 다가왔다.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좋은 작품으로 읽혀질지는 모르겠지만(남자는 늘 독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종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남자에게는 기념적인 작품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책이 서점에 깔릴 때를 상상해보았다.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써, 좋은 책은 무엇일까.
남자는 자신이 서점에 가서 책을 살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로 보는 것은 작가, 그리고 둘째는 표지의 아름다움 이었다. 셋째가 되어야 책을 펼쳐서 내용을 볼 생각이라도 드는 것이었다. 남자는 내용을 읽기 전의 것들에 대해 주목했다. 남자는 유명하지도 않았고, 특출난 학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남자는 표지에 공을 들이기로 했다. 남자는 곧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수소문 해보았다. 남자는 그 중 몇 몇과 만나 자신이 원하는 표지를 설명하고, 걸리는 시간과 금액을 물었다.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약 한 달 이었고, 남자가 말하는 이미지를 이해는 했으나 자신의 스타일이 들어가면 그림이 다소 변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액은 100~200만원이 필요했다.
남자는 금액선에서 멈칫했다. 남자는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한달 수입이 80만원 남짓했기 때문이었다. 모아놓은 돈도 없었기에 그 금액을 모으기 시작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걸릴지 장담을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남자는 어느날, 직접 미술을 배우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남자는 이미 소설로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는 것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닿아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가 직접 한다면 금액을 절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남자의 입맛에는 딱-. 맞는 표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로 고양된 남자는 그날 바로 집 근처의 미술학원을 방문해 자신의 목적을 설명하고 걸리는 시간과 금액을 물었다. 학원의 대답은
한달에 네 번 나오는 것으로 13만원. 수업 시간은 약 3시간 정도. 남자가 원하는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이런 대답이 나온 이유는 남자의 표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장황한 탓도 있었다) 기본적인 소묘 과정은 8주 정도 걸린다.
남자는 다음 날 부터 학원에 나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