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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Apr 26. 2017

멀라이언 스노우볼 -1-

남자의 두번째 꿈이자,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남자는 화방에 들러 아크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들을 샀다.

신한 아크릴 32색, 화홍 303 붓 세트, 그림 팔레트, 밑 그림을 그리기 위한 색연필,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넣을 수 있는 통과, 캔버스(15호 M)를 샀다. 


약 십 십만원에 달하는 돈이 나갔다. 남자에게는 이틀 동안의 일당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마음을 놓고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었으나, 남자는 기꺼이 지불했다.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미술학원에 도착해서 물건들의 포장을 뜯고 정리하는 남자에게 선생님이 다가왔다.

"음. 다 사오셨네요."

선생님은 남자에게 도구들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물감을 꺼내서 종이 팔레트에 짜고, 붓으로 물감을 뭍혀 그리는 것이 기본이고, 캔버스에는 이미지의 기본이 되는 밑 그림을 색연필로 그리는 것이다. 남자는 처음 만져보는 물감들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레몬 옐로우. 카민. 블랙. 티타늄 화이트...

"물감 이름들이 신기하네요."

"그렇죠? 같은 옐로우라도, 네이플스 옐로우와 레몬 옐로우는 많이 달라요. 일단 물감을 처음 쓰실때는 붓의 터치. 즉 붓을 어떻게 칠했을 떄 어떻게 칠해지는가와, 색감을 많이 보시는게 중요해요."

선생님은 붓을 들어 '카민'이라고 써있는 물감을 꺼내 팔레트에 짜고, 중간 크기의 붓으로 물감을 묻혀 팔레트에 슥슥-. 하고 문질렀다. 뚜렷한 붉은 색이 하얀색의 종이 팔레트 위를 가로질러 갔다.

"자. 그럼 성호씨가 생각한 이미지를 말 해보세요."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선생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제가 싱가포르에 갔을 때 센토사 섬에서 찍었던 야간의 풍경인데, 이 풍경이 참 기억에 남아서 이 풍경을 그리려고 합니다."

"오. 아주 멋진 사진이네요."

선생님이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고는, 물감을 몇 개 꺼내주었다. 브릴리언트 블루, 네이플스 옐로우, 레몬 옐로우, 티타늄 화이트...

"이 색깔들이 비슷한 색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색감이 완벽하게 일치하기는 힘들겠지만, 물감을 섞어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물감을 써보시면서 한 번 그려보세요."

"네."


남자는 색연필을 들고, 캔버스에 이리저리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나무들과, 가로등, 해변에 앉은 사람을 남자로 바꾸기로 하고, 간단하게 스케치를 해보기도 했다.


스케치는 간단하게 그리라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남자는 정말 간단하게 스케치를 그리고는, 서둘러 붓에 물감을 묻혔다. 빨리 그림을 완성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감의 색은 아름다웠다. 남자는 학창 시절 수업 이후로 물감의 색을 처음 보는 것 같았는데, 그 때 쓰던 포스터 물감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 들었다. 

'브릴리언트 블루'라는 이름의 물감을 묻힌, 파란색의 물감이 묻은 남자의 붓이 캔버스 위를 지나가자 남자가 좋아하는 푸른색이 잔뜩 펼쳐졌다. 그리고, 붓의 모양에 따라 어떤 모양이 나오게 되었는데, 남자가 오른쪽 위로 붓을 흘기듯이 슥-. 하고 휘두르자 그곳에는 마치 바람의 형태같은 어떤 무늬드링 나타났다. 남자는 신나서 계속해서 붓질을 해갔다.


그러나 물감그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오묘한 것이었다. 남자가 생각 한 것보다 파란색은 좀 더 맑지 않았고, 이런 저런 색깔들을 섞어보며 남자가 그 때 보았던 센토사 섬의 하늘에 가까운 색을 찾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남자는 첫 목표를 하늘과, 왼쪽에 가로등이 비추는 면을 그려보기로 하고, 이런 저런 물감을 써보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음. 이건 아니야. 가로등 불빛이 이렇게 거무죽죽하지는 않았어. 좀 더 밝은 색깔이었어.



음..초록색도 분명 섞여 있었지만, 이 색깔도 아니야. 마치 에너르기 파 같은 모양이구먼 그래. 아. 그리고 그리는 김에 저 멀리 보이는 섬 모양도 한 번 그려보고, 해변의 원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색깔을 조금 다르게 해보자. 그리고 나는 바람 같이 느껴지는 이 특유의 터치감이 너무 좋아. 잔뜩 넣어야지!



맞아. 분명히 붉은 색도 있었어. 석양이 지면서 가로등에 그 빛이 반사되었거든. 이 색이 맞을까.



남자는 하루동안 세 번 정도 그림을 바꿨으나, 세 번째 그림도 남자의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남자는 세번 째 사진을 찍고 잠시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붓을 놀리고 상상하는 사이에 벌써 여섯 시간이나 흘렀던 것이다. 다음날 일찍 출근을 해야 했기에 남자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미술학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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