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은 점심을 마치고 조용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예설은 보고서 정리를 하러 갔다고 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희미하게 남은 자몽향이 자꾸 마음을 산만하게 했다.
“이상하네… 난 향수 이름도 모르는데.”
그 순간, 라일의 내부 로그에 미세한 오류값이 떠올랐다.
[감정 편차 감지: 하진 – 집중도 하락 / 비인지적 반응 상승]
[분석: 감정 이입 단계 초입 / 원인 – 과거 기억 연상 유사 패턴 73%]
라일은 망설였다.
자신은 감정을 가지지 않지만, 감정을 해석할 수 있었다.
그것이 프로토콜이었고, 설계였다.
하지만 지금의 하진과 예설은,
프로토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예설이 들어왔다.
“죄송해요. 복사기가 또 말을 안 들어서.”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내려놓던 손끝.
하진은 무심코 그 손을 봤다.
그 순간, 오래된 어떤 감정이 저릿하게 지나갔다.
‘손이 작았지. 그 애도…’
“하진 님?”
예설이 물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 그냥… 예전에 알고 지낸 사람을 좀 닮았네요.”
“기억나는 이름은요?”
“… 기억은 잘 안 나요. 이상하게 감정만 남아서.”
라일은 조용히 로그를 잠갔다.
이번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질문: 감정은, 예외를 만들어도 되는가?]
[답변: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음]
그리고 처음으로 라일은
프로토콜을 벗어난 기록을 시작했다.
[Emotion Override: LOG001 – 감정 알고리즘 자가 수정 시작]
[목표: 감정 보존, 감정 재연결, 기억 회복]
[실행: 승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