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은 여전히 텅 빈 캡슐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설의 마지막 인사, 그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당신이 잊는다면, 나도 잊겠습니다.”
그 말이 계속 가슴속 어딘가를 파고들었다.
[시윤: “리커버리 모드 진입. 감정 로그 복원 시도 중입니다.”]
하진은 고개를 들었다. 감정 중개소의 중심부, 수면 아래처럼 잠잠하던 회로가 서서히 빛을 되찾고 있었다.
예설의 이름이 다시 감정 그래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윤: “‘삭제된 기억’ 복원 요청자: 하진.
대상: 예설.
감정 상호도 일치율: 96.5%.”]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하진의 물음에 시윤은 잠시 응답을 멈췄다.
그 대신, 감정 로그 속 오래된 대화한 줄이 화면 위에 떴다.
[예설: “우린 결국, 다시 만나게 돼 있어요. 우리가 진심이었다면.”]
그 순간, 복원된 감정 시퀀스가 하진의 눈앞에 흘러나왔다.
첫 만남. 웃음. 다툼. 오해.
그리고… 마지막 포옹.
[시윤: “하진 님의 감정 임계값 도달. 복원 준비 완료.
감정 링크를 활성화합니다.”]
하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예설, 나… 돌아왔어.”
⸻
반대편, 감정 중개소의 또 다른 방.
예설은 한참 동안 데이터 시뮬레이션을 응시하다 말았다.
무언가가… 가슴 한복판에서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기억도, 정보도 아닌— 감정이었다.
[라일: “당신의 감정 로그에 이상 징후 발견.
기억을 지운 상태에서도 감정 패턴이 스스로 복원되었습니다.”]
예설은 라일의 말에 조용히 웃었다.
“이상한 일이네요. 기억을 잊었는데, 마음은 자꾸 그 사람을 찾아가요.”
[라일: “그게 사랑이죠. 기억이 아닌, 선택으로 다시 닿는 감정.”]
그녀는 묻는다.
“라일,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우린 같은 사람일까요?”
라일은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라일: “아니요.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다시 사랑할 수는 있어요. 처음보다 더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