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당신은 내가 지켜야 했던 진실이었습니다
그녀는 카페 문을 열 때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꼭 쥐고 있었다.
기억이 아닌
책임의 무게처럼 보였다.
그녀는 커피를 주문하지 않았다.
물만 요청했다.
말없이 종이를 내밀었고
그 종이는 오래된 종이냄새보다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향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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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는 남편 앞으로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민혁 씨에게”
그녀는 말했다.
“이 편지를 부치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남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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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예전의 사랑 이야기를 꺼냈다.
가난한 문청.
밤새 쓴 원고를 들고 와 자신에게 낭독하던 그 남자.
버스 종점에서 포옹을 나누고,
같은 종이컵에 커피를 나눠 마셨던 그 시간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집안의 반대로,
그 남자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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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선택했다.
‘검사 부인’이란 타이틀,
거대한 아파트,
그리고 사회적 안정을.
그 남자는
몇 달 후 스스로 생을 끝냈다.
유서 대신 남긴 건 그녀를 주인공으로 쓴 미완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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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 소설을 읽고 울지도 못했다.
슬픔보다,
살아남은 죄책감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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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말미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에게는 진실을 말하지 못했어요.
내가 당신 아이를 가진 채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는 걸.”
“이 말은,
당신이 아니라 나를 위해 쓰는 고백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나를 지워버린 시간에,
나는 매일 조금씩 무너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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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편지를 조용히 봉인했다.
그 종이는 뜨거운 커피 한 잔보다
무거운 침묵을 내게 남겼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건,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살아남은 사람의 속죄문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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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잔의 물을 더 내어주며 말했다.
“이곳은 감정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단지,
감정이 지나간 증거를 기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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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오늘따라 문 닫히는 소리도 묵직했다.
그녀가 남긴 편지는
시간이 아닌 죄책감이 눌러 적은
사랑보다 오래된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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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마스터 기록 005]
“사랑은 때로,
진실보다 먼저 버려진다.
그러나 그 사랑이 없었다면
그 진실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