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회계학 番外 – 현금성 자산이 충분한 날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은 잔액을 확인하지 않는다.”
은행 앱도, 이메일도, 슬랙 알림도 열지 않는다.
보고서가 나를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현실의 탭을 닫았다.
호텔 커튼을 천천히 젖히면
햇살이 대리석 바닥 위에서 금빛으로 번진다.
부드럽게 닦인 유리창 사이로 바람이 미끄러져 들어오고,
방 한가운데에는 여유라는 단어가 천천히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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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프톱의 아침
브런치는 루프톱 카페에서.
메뉴판의 가격대는 심리적 저항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28달러짜리 싱글 오리진 커피를 주문하자
바리스타가 물었다.
“오늘은 어떤 향을 원하시나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계산서의 냄새가 나지 않는 향이면 좋겠어요.”
그는 웃었다.
그리고 커피가 내 앞에 놓였을 때,
거품 위에 조용히 반사된 햇살이
내 감정의 잔액을 천천히 채워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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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티크의 오후
오늘의 일정은 단 하나 — 쇼핑.
하지만 목적은 소유가 아니라 위안이다.
나는 백화점 대신, 골목 끝의 부티크를 찾았다.
입구 유리문에는 ‘by appointment only’라는 작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점원이 나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번 시즌은 J님 톤에 맞게, 부드럽고 시적인 라인으로 나왔어요.”
그 말에 순간, 옷보다 마음이 먼저 피팅됐다.
옷을 고르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예전엔 옷의 가격표를 먼저 봤지만,
오늘은 표정을 먼저 본다.
‘이 표정이라면 괜찮아.’
그게 오늘의 승인 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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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텔 바의 밤
저녁엔 호텔 바로 내려왔다.
창밖엔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고,
내 앞의 샴페인 잔엔 현실보다 부드러운 세계가 담겨 있었다.
조용한 재즈, 얼음이 녹는 소리,
그리고 아무런 알림도 울리지 않는 밤.
누군가 물었다.
“오늘 하루, 가장 잘 쓴 돈은 뭔가요?”
나는 대답했다.
“계산하지 않은 시간요.”
오늘 하루는 감정 자산이 무한대인 날.
모든 공제 항목이 사라지고,
지출의 총합이 행복으로만 남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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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Credit
지출 총액: 0원
감정 수익: +
오늘의 회계는 마감하지 않는다.
꿈속의 하루는 마감하지 않아도
이미 완벽히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