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지 않았는데,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책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다.
추리도, 반전도, 이름이 같은 범인도.
그런데 어느 날 추천글 하나에 발이 걸렸다.
**《봄에 나는 없었다》**라는 제목이었다.
읽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봄에 나는 없었다.”
존재를 부정하는 문장인데, 변명할 틈도 주지 않았다.
이 소설에는 큰 사건이 없다.
주인공은 사막의 외딴 숙소에 고립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밖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한다.
좋은 아내였다고 믿었던 순간들,
헌신적인 어머니였다고 생각했던 말들,
예의 바르고 옳았다고 확신했던 태도들.
그 기억들이 하나씩 방향을 바꾼다.
사랑은 통제처럼 보이고,
선의는 상처로 남아 있고,
도덕은 상대를 판단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책이 무서운 이유는
주인공이 악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다.
그래서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제목의 ‘봄’은 계절이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따뜻하게 피어나게 해주는 시기다.
이 책은 묻는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봄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질서였을까.
아직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미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라면,
아마 언젠가는
끝까지 읽게 되겠지.
다만 조금 더
용기가 생긴 뒤에.
Emotion Journal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잘해줬던 기억을
다시 펼쳐 보았다.
말은 정확했고
태도는 단정했으며
틀린 문장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 계절엔
내 온기가 없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봄은
옳음으로 오지 않는다.
봄은
따뜻함으로만 남는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질서였을지는 몰라도
계절은 아니었다.
다음 페이지에는
조금 덜 옳고
조금 더 따뜻한
문장을 남겨보고 싶다.
그게
늦게라도 도착한
나의 봄이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