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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Sep 19. 2015

면접

간절합니다

나는 지금 간절합니다.

그런 나의 맞은편에 앉은 세 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이 읽던 이력서에서 눈을 떼며 고개를 듭니다.

면접관이 묻습니다.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무엇입니까?

그건...말입니다.

..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새벽에 일을 나가셨어요. 오토바이를 타고요.

아버지가 처음 일을 나가는 모습을 본 건 국민 학교 입학을 하던 때, 1993년 3월 2일 이였습니다. 그 날, 국민 학교 입학식 날 이였거든요. 처음으로 새벽에 깨어나 아버지와 대화를 하였던 날입니다. 화장실 노란 조명이 새어 나오는 것과 쏴아 하는 물소리. 

아버지가 묻습니다. 왜 이리 일찍 일어났니. 더 자거라. 

아빠, 오늘은 잠이 오지 않아요. 지금 일을 나가시는 거세요?

새벽 네 시 반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이른 시간.

푸름과 검음이 창문 밖에서도 뒤 섞이지 못한 채 비명도 잠자는 이 새벽에 아버지와 나의 대화만이 잠시 흐름이 멈춰진 적막을 메웁니다. 

그 사람과 그 시간대에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나는 이걸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그나저나 나는 지금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합니다.

내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니.

언제더라.

..

새벽 이였습니다.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파주의 응급실 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하던 건설현장에서 발을 잘못 디뎌 추락을 하셨다고.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고. 아버지의 입원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엄마와 내가 새벽에 오는 전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이것뿐입니다. 새벽에 오는 전화들은 주로 좋지 않은 전화들 뿐 이였습니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전화를 받는 엄마의 조그마한 목소리.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동생.

실눈을 뜨고 듣고 있노라면 전화의 내용은 새벽 출근길 택시와 아버지의 오토바이 사고, 아니면 건설현장에서의 불안한 임시 구조물들과 관련된 사고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싫어요. 꽤 단호히 싫습니다.

..

불안한 것들을 디디며 걸어가는 삶은 왜 우리 아빠의 것입니까.

..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며 나는 쫓기듯이 살았습니다. 그것들은 내가 성실한 척 해댈 때의 큰 뿌리가 되었습니다. 내 입으로 성실했다고 말을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실제로 나는 그러지 못하니까요.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돈을 버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무슨 일을 할까. 아니 그게 언제쯤일까. 불안했습니다.

수능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부터 지하철에서 델리만쥬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에도 일을 하고 돌아오던  그때에 어떤 친구는 내게 돈벌레라고 했습니다. 못 들은 척 외면했습니다.

..

비와 눈이 오면 불안했고, 뉴스에서 다른 건설현장의 사고 소식들을 보는 것은 불편했습니다.

학교에서 야간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일찍 잠든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육체노동자들은 오늘도 잠에 일찍 듭니다. 하루가 고되기 때문에. 눈을 감으면 하루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기에 잠자리에 일찍 드는 것은 하루를 정리하는데 있어 괜찮은 일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블랙커피를 드셨지만 잠은 일찍 드셨습니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담배를 태우시며 블랙커피를 마십니다.

..

가끔은 엄마와 동생, 나. 이렇게 세 명의 삶을 상상한 적도 있습니다.

..

우리도 잘 살 수도 있을까요? 아니요. 나는 애초에 이런 생각은 포기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생각뿐 이였습니다.

..

국민 학교에서는 처음 반을  배정받고 일주일쯤 되면 설문 조사지 같은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의 주소와 평수를 적고, 부모님의 학력을 적고. 집이 우리의 것인지, 아니면 전세인지, 월세인지. 차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꽤 자세히 적어야 했습니다.

..

나는 먼저 부모님의 학력 란에서 항상 멈칫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중학교를 중퇴하셨지만, 나는 창피해서 고졸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아니 창피해서 라기 보다는 왠지 그렇게는 적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그 사람들은 부모님의 학력까지는  조회해보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그리 적는 것도  조마조마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그리 적어왔던 대로 나는 고민하지 않고 적었습니다.

부모님의 회사의 이름을 적으라고 했던 란에는 항상 건설회사라고만 적었습니다. 목수의 일은 고정된 일자리는 아니기에 어느 하나 그 질문들에 맞는 답을 제대로 적기는 힘들었습니다.

친구들의 것을 슬쩍 보면 사실 가끔 조금은 부러웠습니다. 어렸으니까요. 지금은 괜찮은데.

..

나, 어렸을 때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도 아버지가 현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떨어진 적이 있어요. 그때 받은 산재 보험금으로 지금 집을 사는데 큰 보탬이 된 거죠. 그렇게 이 집에 산지 20년이 넘었어요. 그게 그렇게 된 거예요. 근데 있잖아요. 아버지가 또 다치셨어요. 

얼마 전에 말이죠. 나, 이제는 그래도 대학생인데 응급실에서  전화받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거 있죠. 많이 무서웠어요. 근데 그 산재 보험금으로 우리 집 처음으로 차를 샀어요. 조그마한 경차이지만요. 

어렸을 때, 내가 제일 부러운 건 말이죠. 친구들이 주말이면 부모님이랑 차를 타고 어디를 놀러 갔다 왔다고 말하는 거 에요. 그게 제일 부러웠어요. 이제 안 부러워해도 돼요.

..

내 눈앞에 면접관이 다시 내게 물어온다.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입니까?

..

저희 집이 얼마 전에 처음 차를 샀습니다. 제가 운전을 해서 아버지가 일하는 건설 현장에 어머니랑 저랑 아버지랑 셋이 다녀왔어요. 동생은 지금 군대에 있어서요. 근데 그때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소녀처럼 웃으시며 너무 좋아하시는 거 에요.

..

엄마, 기분 좋으세요?

아들, 엄마 지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너무 행복해.

엄마, 나도 그래요.

..

면접관님. 제가 일을 하게 된다면요. 돈을 조금이라도 많이 벌게 된다면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새벽을 조금은 뒤로 미뤄 드리고 싶어요.

..

그렇게만 된다면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저 지금 조금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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