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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Feb 23. 2016

대필代筆

1. 무명시간

대필代筆     

김 재운     


 죽음이란 것이 이리도 가까이에 있는지 미처 알지 못 했다. 강혁의 죽음 이전까지는 말이다.     

 강혁은 글쓰기를 좋아했다. 강혁은 나와 같이 문학을 전공 했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는 무역을 하는 작은 기업에서 일을 했다. 그는 졸업 후에도 틈틈이 글을 적고는 했다. 처음에는 짧은 몇 편의 시를 적어 내게 보여주었고, 그 후에 그의 글들은 습지가 물을 머금은 듯이 조금씩  늘어지고, 아니 길어지고 있었다. 그의 글이 길어질수록 그는 회사생활에 아니 사회생활에 힘겨워 하는 듯 했다. 내게 술을 마시자고 전화하는 날들이 늘어났으며 술을 마시고 나서는 그가 쓰고 있는 글들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 해주는 일들이 잦아졌다. 

오늘은 강혁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의 장례식 이후 5개월 만인 것 같다. 


우리가 버티며 보내온 시간들이 아름답다. 지나간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아버지는 나를 한번 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강혁의 아버지와는 일면식이 있었다. 이전에 강혁과 나는 그의 아버지가 일하시는 강원도 영덕의 건설 현장으로 자동차를 가져다주기 위해 함께 여행 아닌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강혁의 아버지는 목수 일을 오래 했다. 목수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건설현장의 인부 일을 했으며 주로 계단을 만드는 일을 하셨다고 강혁에게 들었다. 일은 오래 하셨지만 그의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오야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햇빛 에 오래도록 그을린 돌아올 수 없는 무거운 구릿빛 피부였고 얼굴에는 동년배의 우리 부모님보다도 많은 주름이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곳, 횟집 에서 아버지의 동료 분들, 흔히들 말하는 노가다 꾼 아저씨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소주가 인당 2, 3병이 되었고 더는 술을 못 먹겠다 싶었지만 아버지가 주시는 술은 그래도 끝까지 다 받아 마셨던 기억이 난다. 바닷가였지만 횟감 안주 가격이 싸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때문에 아마 큰돈을 쓰셨던 것 같다. 방은 아버지가 숙소 옆의 모텔로 잡아 주셨다. 다음 날 아침식사 까지도 인부들이 먹는 그 식당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 결제 해 주셨다. 강혁은 왜 인지 모르겠지만 방에 돌아 와 나에게 고맙다고, 고맙다고 연신 소리 내어 이야기 했다. 그게 강혁의 아버지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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