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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Jan 16. 2017

문우文友

다만 나는 미숙함을 좋아한다. 어제는 서투름을 좋아하고 또 미완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어제는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좋아하고 마음으로 다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사람보다 소극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이미지가 소비되는 시대이다.

사진 네댓 장이면 대통령의 업적과 심지어 그가 가진 인성의 따스함까지 전해지곤 한다. 이미지는 그것이 장점이다. 빠르고 이해하기 쉽다. 한 마디로 굳이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이미지를 기반한 sns상에 다섯 문장이 넘어가는 긴 글을 적을 이유는 굳이 없다. 그런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잘 알고 있다. #를 하는 것이 올바른 인스타그램의 사용법이며 사진 한 장으로 #와의 인과관계를 잘 엮어 포스팅하기만 하면 된다.

국밥을 맛있게 먹던 MB나 본인이 턱받이를 하고 노인에게 미음을 떠먹이던 반 총장을 보면 이미지의 위험성과 효율성이 동시에 하나의 그릇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와 같은 무재 능의 사람이 글을 적는다는 것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출판을 위한 여러 가지 플랫폼들도 생기고 있고 그것들이 유입되는 루트와 소비되는 방법은 아직은 사실 조금 더 편도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곧 소비자이며 소비자가 곧 플레이어가 되고자 한다. 그 사이에 권위가 있고 그 기반에 경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플레이어가 양산한 콘텐츠를 플레이어도 소비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리그지만 모두가 우위를 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학교 1학년의 첫 번째 중간고사 날이었다. 내가 정한 목표는 반에서 10등 안에 들기였는데, 나는 첫 번째 인생의 중간고사에서 정확히 딱 10등을 했다. 1학년은 그런 목표를 지키며 그 자리를 지키며 그냥저냥 1년을 보내 버렸다. 2학년 때에 나는 조금 더 재미있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것은 내 앞자리에 앉은 신보섭이라는 친구의 성적만 이기자였다. 그 친구가 몇 등을 하든 상관은 없었다. 그냥 이기기만 하면 된다. 10등이라는 등수에 대한 집착보다 한 친구에 대한 집착이 더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전투본능 같은 게 생겼고 그 친구의 행동에 대한 이상한 반감심도 생겼으며 '그냥' 나는 이유도 없는 경쟁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성적에 대한 경쟁심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의 모든 행동이 고깝게 느껴지는 상황에 이르렀고 아마도 나는 학년 말에 그 친구와는 주먹다짐을 했던 적도 있었다. 큰 이유나 발단이 없었기에 지금도 그 영문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가 않다. 사람들이 쥐어준 사춘기라는 단어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최근 들어 곱씹게 된 단어는 문우 (文友)이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처음에는 데면데면하다가도 소주 두 세잔을 돌리다 보면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농을 던지거나 해서 존재감을 표현하곤 했다.

심지어 극히 색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편이었지만 나는 최근에는 정치적인 주제를 가진 자리에서도 그래도 3 문장 정도의 발언을 하고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태도를 가지려 노력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부동산 유리벽에 붙어있는 A4용지에 적힌 그 지역의 전세나 월세값, 새로 나올 자동차의 상세 제원, 외국어 실력 향상 같은 지극히 가지고 싶은 것들이었다.

가지고 싶은 것 따위를 고민하다가 입에서 새어 나온 단어가 문우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수업시간에 필기를 놓쳐 빌려 보았던 친구의 국어책과 미국 소설 수업을 마치고 캠퍼스의 나무 벤치에 앉아 동기 형과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새삼 생각이 나버렸다. 

군대를 제대하고 동기 형과 나는 매일을 앞자리에 앉았다. 봄이어서 캠퍼스에는 벚꽃이 많이 피었고 이내 곧 지었다. 혼자라면 앉지 못했을 그 앞자리에 앉아 수업 중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교수님과 아이컨택을 누렸다. 공부는 못 하니 눈도장이라도 열심히 찍자는 복학생들의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그 단순한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2학년의 급우級友와 제대 후 대학 2학년의 문우文友가 지금은 나에게 없다. 있었으면 좋겠다.

가지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말은 반대로 가진 것이 너무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득 자리를 차지한 것은 욕심이고 그 옆에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나의 소심이라 무엇 하나 쉽게 밀고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많았다. 벌여 놓은 계획이 실천되지 못한 채 사그라들거나 실천되었지만 너무 우스운 결과물들만이 나왔을떄에도 그 결과와는 반대로 우리들은 마음 놓고 웃지 못했다. 


이미지가 소비되는 시대이다. 글을 적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바보 같은 문우文友들이 내 주변에서 나와 함께 작금의 현실과 현상을 같이 외면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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