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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운 Jan 08. 2017

돌아오는 화요일


이거 명반이야. 꼭 들어.

그래, 적어도 화요일까지는 친구들을 내가 어떻게 좋아했었는지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다.


일본에서 직장을 가지고 몇 년간 일을 하던 경선이가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을 모으겠다고 경선이와 통화 중에 단언하듯이 약속을 해버렸지만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도 더 지난 이 상황에서 친구들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언은 허언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결국 우리는 35명 정도의 급우들 중 약 5명에서 본인의 지각을 선-공지한 친구까지 대략 6명 정도의 예상인원이 돌아오는 화요일 종각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친구들이 종각으로 모이는 경로 또 한 상당히 다양하다. 이전이었으면 우리는 노원역의 호프집에서 모이는 편이 가장 편한 선택이었겠지만 친구들의 거주지는 이제 더 이상 노원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있고 말 그대로 여기저기 서울과 경기도의 소재로 흩어지게 되었다.

내가 속한 인적 네트워크에서 적어도 동창회라는 단어는 한 번도 성사되거나 이루어진 적이 없다. 결속력이 약한 사회의 구조 속에 속해 있는 것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것인지도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나의 인맥은 그냥 빈약한 것으로 결론짓는 편이 속 편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 밥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면 누군가는 본인의 결혼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대학교 이전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회의감을 많이 느낀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아쉽지만 이번에도 반창회라는 단어조차 붙일 수가 없다.

업계의 연봉에 대해서 묻거나, 연락이 왔던 회사의 위치에 대해 묻곤 했던 특정한 성향의 친구들은 누가 또는 그 반에서 대략 몇 명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갔는지에 따라 그 학급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곤 했다. 5명 이상이 갔다면 그 반은 문과계열 치고는 나쁘지 않은 반으로 평가되었다. 

평가를 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 반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몇 명이나 갔지?라고 굳이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물을 필요가 없는데 대화의 시작은 주로 그런 것을 기반으로 하여 가지를 더하며 전개되곤 했다. 사람이 가진 기질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문과/이과로 첫 번째 분류를 시작하고 문과라면 상경계와 어문계로 2차 분류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이과라면 전자, 전기, 화공대 그렇지 않은 자연대 생으로 나누어 인생의 사이즈를 재어 본다고 할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진도가 빨리 나갔다. 

겨냥된 것은 그의 경력이었지, 인간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가 열심히 산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꺼낼 때에 결론의 대 전제는 그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열심히 한 사람들의 실패는 언급된 적이 있었나 나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있지가 않다.


일요일 저녁에 마시는 맥주는 합리적인가 친구에게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친구가 나에게 목욕 후 마시는 맥주의 목 넘김에 대해 설명하였을 때에 나는 그 말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설명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노력 끝에 나도 그 목 넘김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슬픈 일이라면 더 이상 나에게 어떤 음반이 명반인지 친구들이 설명해 주지 않는 일, 그 뿐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곤 한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무엇인가 박수를 치고 노래를 하거나 심지어 춤까지 추어 버린다면 그 자리에 있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하면서도 비릿한 이 기분이 어딘가로 빠르게 휘발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휘발되는 기분은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가 없다. 내가 소비해 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일 수도 있고 그와 반대일 수도 있다. 갈지 자로 걷는 나의 걸음과도 같다.


우리는 개인으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평가와 평판은 이다지도 자주 일어나지만 당신의 안부를 진정으로 물은 적은 몇 번 없는 듯하다. 우리가 돌아오는 화요일에 만나면 반가웠다고 말하겠지만 그 이후에 우리는 누군가의 청첩장 없이 만날 수 있을까, 라는 말을 우리는 꽤 여러 번 자주 하며 멀어진 사이와 우리의 관계들을 그냥 그렇게 정리하고 정의했다. 

적어도 화요일까지는 친구들을 내가 어떻게 좋아했었는지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다.

이거 명반이야. 꼭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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