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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Jul 05. 2016

소비되고 잊혀지는 콘텐츠 속에서

영화 리뷰: 더 레슬러



※본문에 스포일러가 어느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수년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레슬링이라는 TV 쇼프로에 열광했다. 비록 각본이 있는 스포츠였지만 레슬링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무기로 하나의 인간극장을 표명했다. 게다가 다양한 기술을 이용한 격투기라는 메인 디쉬는 뭇 남성들을 열광시키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레슬링 문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쇠퇴했다. 수다의 중심에 있던 레슬러들에 대한 화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레슬링 신드롬은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무한도전>이라는 인기 버라이어티프로가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레슬링을 각인시켜주었다. 그들은 레슬링이 단순 설정된 쇼에 불과한 것이 아닌, 무대 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점을 알렸다. 그러나 대중들의 관심은 결국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감에 따라 다시 시들해져 버렸다. 레슬링 특집 자체도 결국에는 레슬링 그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 속의 하나의 컨텐츠로서 소비되어 버렸다는 점으로 그 한계를 드러냈다.






   영화 [더 레슬러]의 상황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더 램'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늙은 프로 레슬러 '랜디'는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퇴물로 남아있다. 여전히 그를 사랑해주는 팬들도 있지만 찬란한 과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한때 그가 열정을 바쳤던 세계는 소규모 공연장의 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아직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동네 꼬마를 데리고 자신이 등장하는 오락기 속의 레슬링 게임을 하는 모습은 짠할 정도다. 그러나 꼬마마저도 "요즘은 그런 게임 안해요. 콜 오브 듀티 같이 게임이 더 재밌어요."라며 최신식 게임을 언급하고 떠나가버린다. 게임 속에 존재하는 랜디의 모습마저도 이제는 먼지 쌓인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 레슬러]는 이미 소비되어버린 스타의 모습을 상영 시간 내내 잔잔하게 또 처절하게 그려낸다. 앞에서 언급했듯 그의 영광은 어제와 같지 않고 심지어 노화로 인해 건강까지 악화됐다. 랜디는 결국 돈을 위해 폭력적인 장비를 사용하는 위험한 레슬링에까지 참여한다. 결국 그의 몸은 회복이 힘든 상태로까지 추락해버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일평생을 바쳐서 하나의 콘텐츠 그 자체가 되었고 그것의 그의 인생 전부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세계가 몰락했고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목을 옭아매기까지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투자한 열정과 인생에 대해 공허감밖에 느끼지 못한다.






   램지는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술집에서 여성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주며 추파를 던지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던 그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타이밍이 참 아이러니하다. 생계유지를 위해 백화점 식료품 코너에서 근무하던 중 누군가가 그를 알아본 것이다. 과거를 뒤로 묻어두고 마음을 다잡던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머리를 묶고 앞치마를 두른채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 사장에게 구박을 받는 왕년 스타의 모습을 쳐다본다. 결국 랜디는 수치심과 회의감을 느끼고 다니던 직장마저 뛰쳐 나온다.


   결국 그는 병든 몸을 이끌고 다시 레슬링장으로 돌아온다. 그가 머물 장소는 스테이지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가 맞닥뜨린 사회는 그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동네 아이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현실속에서 큰 외로움을 느낀 랜디. 그는 자신이 열정이 보답받는 곳,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레슬링의 세계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그 무대라는 곳이 자신을 갉아먹고 소비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밖의 세상에서 다치느니 무대에서 다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 레슬링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모든 소비 컨텐츠가 이 이야기에 적용될 수 있다. 한 분야의 장인들은 그것에 집중함으로 자신의 재능을 불태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콘텐츠들은 엄청난 속도로 소비되고 산화한다. 대중들은 초신성에 환호하지만 그것이 한번 식기 시작하는 순간 무서운 속도로 관심은 꺼져버린다. 새로운 자극에 눈을 돌리고 기존의 것은 잊혀져 버린다. 그 때 그곳에 남아있는 자들은 어떻게 될 까? 개중에 유사 분야로 진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그것은 배우의 이야기일수도, 스포츠 선수의 이야기일수도, 사업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현실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수많은 소비 컨텐츠들이 탄생하고 사라지고 있다. 자신이 주류라고 믿고 있던 것들이 통째로 쓸어내려지는 현상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 이면에도 이미 수많은 랜디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존재하고 있고, 누군가는 또 다른 랜디가 될 것이다. 결국 모두는 양자택일을 해야한다. 자신이 살아오던 세계를 등지고 떠나던가, 그 세계와 같이 몰락하던가. 참 시퍼렇고 냉정한 세상이다.




본 글은 [디 아티스트 매거진]에 칼럼으로 기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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