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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Jul 03. 2016

기득권의 횡포에 날리는 유쾌한 한방

영화 리뷰: 베테랑


※본문에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4년 12월 5일, 뉴욕 JFK 공항에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한다. '조현아 땅콩 리턴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많은 매체로 하여금 갑질 문화라는 단어를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계적인 기업 문화와 더불어 가족 단위 승계 현상, 그리고 자본주의와 정부가 얽힌 정경유착 등의 현상이 얽혀 고약한 기업 문화를 탄생시켰다.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던 헌법 정신은 오래전부터 글뿐인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우습게 여겨지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힘에 짓눌린 새로운 계급 사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이 꼬집고 있는 부분도 이와 매한가지다.



          영화 [베테랑]의 핵심 내용은 극 중 '조태오'가 일으킨 사건이 될 것이다. 평소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다니는 트러블 메이커이자 대기업의 셋째 후계자이기도 한 조태오. 그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배 기사'를 사무실로 불러들인 뒤 그의 아들이 보는 앞에서 무차별 폭행을 저지른다. 떡이 되도록 맞아 엉망이 된 그에게 조태오는 지금까지 밀린 월급을 비롯해 거액의 수표를 적선하듯 던져 준다. 이에 분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배 기사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들만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내고 다시 회사로 향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점점 사건은 악화된다. 그런데 정말 최악인 것은 이 이야기를 그저 뻔한 내용의 픽션으로만은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스크린을 통해 유사한 사건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님을 밝혔는데, 되려 그 점이 이 영화가 실화에 어느정도 기반을 두고 있으나 그를 공개적으로 지적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몇 해 전, SK 물류업체 M&M의 대표였던 최철원이 시위자를 폭행한 뒤 맷값을 준 사건이 있었다. 상당히 비상식적인 사건이며 사회에 충격을 몰고 올만한 사건이었지만 사건이 가진 내용의 무게에 비해 그리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사건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번에 [베테랑]을 보고 나서야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으며, 따지고 보면 조현아 땅콩 리턴 사건 이상의 기득권 갑질 문화를 보여준 사건이었으나 이상하게 묻힌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의 가해자인 최철원은 2011년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 유예 3년, 그리고 사회봉사를 선고 받았으며 이와 같은 판결 결과를 통해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해당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 [베테랑]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겠지만 [베테랑]의 이야기 전개로 추정해 볼 때, 위 사건이 베테랑의 주요 소재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사실 영화상에서 표현되는 대기업횡포는 단순 위의 사건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겉으로는 선한 인상을 심겨주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모습,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종류의 수단도 가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윤리나 도덕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태오를 비롯한 신진 물산의 행동들은 갑질 문화를 넘어서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악행들을 톡톡히 보여준다. 슬픈 사실은 실제로 이 사회에서돈의 힘은 웬만한 가치들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고위 권력자를 통해 공무원들에게 압박을 넣는 것부터 시작해 방송계나 타 기업에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 더 나아가서는 불법적인 행위까지 모두가 돈을 통해 굴러간다. 자본주의는 엄청난 강점을 가진 제도이지만 그것이 잘못된 과정을 거친다면 수많은 악의 근원이 될 수도 있음을 이 영화는 처절히 묘사한다.





          영화상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광역 수사대 팀이다. 주인공이자 극의 주축이 되는 형사 서도철과 그의 아내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다. 권력에 눌리고 돈의 힘으로 사로잡힌 사람들과 달리 서도철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며 신진 물산이라는 대기업을 상대함에 있어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조태오가 여러 수단을 강구해 서도철의 목을 죄여오지만 그는 그에 굴복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간다. 극 중 서도철과 조태오가 대면하는 장면이 몇 차례 보여지는데 수차례의 대면에서 서도철은 한번도 조태오에게 기가 눌린다던지 그를 우러러보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의 악연은 최초의 만남에서부터 삐끗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도철을 비롯한 광역 수사대 팀이 보이는 모습은 다소 우울할 수도 있는 영화의 이야기를 밝게 유쾌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영화상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들은 극의 분위기 자체도 밝게 전환시키고 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원래 경찰이라는 조직이 가진 문화는 그리 밝고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경찰 문화는 계급 문화를 기틀로 구성된 위계적인 질서를 가진 직장 문화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모습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생각하고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서로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주고받는 친구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에 반해 일반 사기업인 신진 물산이 보이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조태오가 행한 실수로 인해 최상무는 엎드려뻗쳐를 한 채 회장으로부터 매질을 당한다. 회장의 긴 회의 진행 때문에 성인용 기저귀를 차는 임원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황당하기까지하다. 기업이 가진 문화가 경찰 문화보다 더 계급적이고 위계적인 문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처럼 무거운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그의 강점인 액션과 가벼운 유머를 활용했다. 황정민과 함께 작업한 [부당거래]에서도 [베테랑]과 유사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다루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두 영화는 완전히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부당거래]가 무겁고 현실적으로 극을 그려냈다면 [베테랑]은 다소 판타지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 중 관객들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할 만한 장면들을 다수 배치하고 화려한 액션 씬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베테랑은 유사 형사물들과 마찬가지로 해피 엔딩의 방향으로 극이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 배 기사의 모습을 비춰줌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번 꼬아서 생각해보면 처절하게 현실적인 영화인 [부당거래]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비극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반면 다소 판타지적이고 공상적인 [베테랑]은 해피 엔딩으로 극이 마무리 된다. 어쩌면 이 같은 전개는 현실과 공상의 차이를 더욱 대비적으로 보여주며, 현실의 비정함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류승완 감독은 비록 픽션에 불과하지만 영화를 통해서나마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을 보여줌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태오와 그의 세력은 또다시 부당한 방법을 사용해서 그들에게 향해있는 징벌의 화살을 피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뒷이야기는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악인들이 법의 집행을 받게 되었으며 또 억울한 일을 당한 배 기사의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운을 던짐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뿐이다. 극 중 서도철이 조태오에게 먹이는 펀치 한방 한방은 류승완 감독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기득권 세력의 횡포에 갖고 있던 불만을 풀어주는 도구이자 그들의 부당한 온상에 먹이는 간접적인 징벌의 주먹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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