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프랭크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4년 하반기가 갓 시작될 무렵 한동안 강렬한 음악 영화 열풍이 불었다. 바로 [원스]의 감독인 존 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이 조용한 돌풍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원스]때와는 달리 스타성 있는 배우들로 구성된 출연진이었지만 [비긴 어게인]이 가진 노래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고 '비긴 어게인'이라는 제목답게 많은 음악인들과 일반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영화에 출연한 '애덤 리바인'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밴드 'Maroon 5'의 보컬로 연기도 나쁘지 않았으며 엔딩곡으로 장식된 'Lost stars'는 일반 버전과 나이트 버전 모두 음원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 또 다른 음악 영화인 [프랭크]가 스크린에 개봉했다.
[프랭크]의 출연진은 [비긴 어게인] 못지않게 화려했다. 비록 엄청난 흥행성을 가진 배우들은 아니었지만 한창 주가를 치솟고 있는 [엑스맨 시리즈]와 [프로메테우스]의 마이클 패스밴더, 국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타임 로맨스 [어바웃 타임]의 돔놀 글리슨, 그리고 [다크나이트]에서 레이첼 도스역을 연기한 메기 질렌할까지 어디선가 한번쯤은 얼굴을 본 인물들로 탄탄한 구성의 출연진임에는 틀림없다. [프랭크]의 네이버상 장르는 코미디다. 음악 영화에 코미디가 결합된다면 발랄한 이야기의 신나는 내용을 생각하는 관객들 또한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가 서있는 위치는 [비긴 어게인]의 밝은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극의 주인공은 '존'(돔놀 글리슨)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음악을 향한 열정은 분명히 있지만 스스로의 실력에 항상 불만족스럽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평가할지 매번 걱정하고 많은 이들을 만족시킬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매번 좌절을 겪게되며 그의 열정과 달리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음악과는 전혀 동떨어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일상에 마법같은 일이 벌어진다. 어찌보면 비극적인 사건으로, 자신의 동네에서 투어를 하던 밴드에서 피아니스트 한명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시도를 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 현장 근처에 서있던 존은 의도치 않게 해당 밴드에 피아니스트로 들어올 것을 제안받게되고 충동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밴드 활동에 전념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밴드에는 정상적인 인물들이라고는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가운데 가장 독특한 인물이 바로 '프랭크'(마이클 패스팬더)라는 작자였다. 그는 광장 공포증이 있어 24시간 내내 커다란 탈을 쓰고 생활한다. 공연을 할때도, 밥을 먹을 때도, 샤워를 할때도 그는 절대 자신의 탈을 벗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세계관을 확립해 그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는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나 그런 그의 지시를 따르는 일은 난해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밴드의 멤버들 모두가 그의 독특한 음악 세계에 빠져 있었고 그는 밴드내에서 인정받는 일종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존재였다. 존 또한 밴드의 일원으로 들어감에 따라 그를 우러러본다. 존은 프랭크의 음악 세계가 괴이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대중적인 느낌을 가미한다면 엄청난 유명세를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앨범 제작 기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그들은 도통 제대로 된 홍보활동을 할 생각을 하지않고 단순 그들만의 음악 작업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돈이 모두 떨어져 존이 자신의 비상금까지 털어 밴드 활동을 지원했지만 그들의 행동에 변화란 없었다. 이에 따라 밴드에 대해 홍보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평가받고 싶었던 존은 수시로 촬영했던 그들의 일상 생활의 모습, 그리고 작업 모습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존은 프랭크를 동경한다. 그리고 프랭크처럼 되고 싶어 한다. 존과 비슷한 인물로 돈이 등장하는 데, 그 또한 프랭크를 동경한다. 돈은 존을 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덧붙여 프랭크처럼 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프랭크처럼 될수는 없다고 한다. 돈과 존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돈은 결국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되고 둘은 결국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편, 존은 SNS에 올린 자신들의 동영상 조회수를 보여주며 밴드 멤버들에게 이제 양지로 나아갈 때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클라라(메기 질렌할)는 그런 존이 마치 전염병 같은 존재이며 결국엔 밴드를 집어삼킬 것이라 저주한다. 사실 밴드가 진정 원하는 것은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광장 공포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프랭크는 어찌보면 천재지만 어찌보면 결코 많은 이들 앞에 나서기는 힘든 인물일지도 모른다. 존의 이야기에 설득당한 밴드는 결국 대규모 락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지만 밴드 내부에서는 점점 혼란이 가중된다.
이 영화에는 세가지의 구도가 형성되는데, 첫째가 존과 프랭크의 구도이다. 이들은 표면상으로는 서로 대립하고 있지 않지만 존이 프랭크를 우러러보는 입장으로 하나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들의 관계는 프랭크가 대중들앞에 나서려하지 않음으로 인해 존으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은 얻지 못해 안달인 대중들의 사랑을 프랭크는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거부하는 꼴이니 말이다. 존은 그가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천재 뮤지션이라 판단했으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그런 부분을 상징한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프랭크의 집에 방문한 존은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프랭크의 행동은 그저 어쩔수 없이 안고가는 정신병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일종의 상징적 천재, 풀어말하자면 "정신병이라는 힘든 삶을 극복함으로서 드러난 천재성"따위의 스토리는 없었다. 되려 정신병은 그의 삶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부분일 뿐이었다고 부모님은 평가내린다.
또다른 관계는 존과 밴드의 대립구도이다. 이 관계는 존과 프랭크의 관계와 어느정도 유사한 형태로, 자신들의 개성을 간직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밴드 멤버들의 시각과 남들에게 인정받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존의 시각이 대립된다. 존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일상 생활을 올리지만 대중들의 그들에 대한 관심은 결국 그들의 노래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단 그들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저 괴짜들을 멀리서 관조하는 데에서 오는 관심이었다는 것을 존은 영화의 말미에야 깨닫는다. 물론 그가 그런 부분들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이를 바이럴 마케팅의 효과로 쓰려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에는 밴드의 가치관과 대립하게되며 분쟁을 일으킨다. 이는 그로 하여금 밴드를 와해시키고 프랭크에게 해를 끼치는 입장으로까지 추락시켜 버린다. 클라라는 존을 향해 "너는 전염병 같은 존재다!"라고 폭언을 한 바 있는데 결국 그 말은 옳은 말이었으며, 존의 "인정에 대한 집착"은 결국 특별한 이들에 끼여 편승하고자하는 그만의 욕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방법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프랭크와 밴드의 관계이다. 프랭크는 천재적인 음악 기질을 타고난 인물로 묘사되며 밴드는 그의 음악을 사랑한다. 하지만 존이 여기에 끼여듬으로 인해 프랭크는 좀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설렘으로 들뜬다. 밴드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프랭크는 존과 밴드의 다툼에서 결국 존에게 남음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려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존이 매번 외치는 '대중적인 노래'는 그의 음악세계에서는 그저 '구린 노래'에 불과했으며 항상 가면을 쓰는 그의 모습은 결국 대중들과의 보이지 않는 갭을 갖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의 한계이기도하다. 그는 천재일지는 몰라도 결국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으며 존이 상상하던 시련을 극복함으로 성장하는 천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큰 시련을 겪은 프랭크는 영화 말미에 결국 밴드의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프랭크와 존, 그리고 밴드의 멤버들 모두 결국에는 기존의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간다.
'존'은 매번 특별해지고 싶어한다. 남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고 SNS를 끊임없이 쳐다보며 남들의 평에 신경을 쓴다. 밴드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남들의 평보다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강한 개성으로 무장되어 있다. 프랭크는 밴드 쪽에 서있다 존에 의해 존의 방향으로 넘어가려 하나 결국 그 한계를 체감하고 다시 밴드에게로 돌아간다. 반면, 존은 '프랭크와 밴드'처럼 되고 싶어하지만 결국 그 한계를 몸으로 체험하고 프랭크를 밴드에게 다시 데려다 준 뒤 쓸쓸히 퇴장한다.
존과 프랭크는 애초에 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존이 추구하는 바와 프랭크가 추구하는 바가 어느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모두 결핍된 인물들이었고 다만 그것을 깨닫지못해 실패를 겪고 원래 그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영화가 존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터라 유독 존만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인것처럼 인지될 수 있는데, 결국엔 존이나 프랭크나 똑같이 결핍된 캐릭터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매꾸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엔 이질적인 그들의 정체성이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 뿐이다. [비긴 어게인]과 이 영화가 대척점에 서있다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이다. [비긴 어게인]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의 "비긴 어게인"이라 한다면 ,[프랭크]는 "프랭크"라는 환상속의 이상향을 바라보는 존과 결국 또다른 결핍된 존재였던 "프랭크"가 만나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서로의 넘을수 없는 벽에 충돌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프랭크]의 장르가 코미디인 것은 이영화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즉 군데군데 실소를 터뜨릴만한 부분들을 많이 넣어놨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구성원들의 개성이 뚜렷한 탓에 중간중간 어이없이 웃기는 부분들이 나타나는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장면들도 몇 차례 등장한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는 절망적이거나 비참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표현하는데에서 비롯된 웃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울면서 웃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도록 웃픈 이야기에서 주로 다뤄지는 장르들이다. 장르로서 블랙 코미디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프랭크]가 그저 밝고 즐거운 이야기가 아님을 한 차례 더 지적하는 포인트가 되겠다.
이런 여러 관계 구도 속에서 각 인물들은 결국 자신이 설 자리에 대해 인지하게 되고, 프랭크와 밴드는 기존의 인디 방향으로 회귀하게 되고 존은 쓸쓸히 밴드를 나와 혼자 길을 걸어간다. 결국 존은 존이고 프랭크는 프랭크였던 것이다. 이를 깨달은 주인공들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관객들의 상상에 맡김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존과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싶었던 프랭크의 한계를 다룬 이영화는 결국엔 자신을 바꿔보자 도전하던 자들이 벽에 부닥쳐 꺾여버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록 시각적으로 잔인한 장면은 없었으나 그 내용만큼은 처절히 비참하고 냉혹했으며 보는이로 하여금 참 복합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나는 존에 가까운 사람일까 아니면 프랭크에 가까운 사람일까, 아니면 그 둘과는 전혀 상관없는 독자적인 나로 존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