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라는 영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13년 작품이다. 이 작품에 뒤따르는 또다른 타이틀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이라는 명칭이다. 오랜 기간 지브리 스튜디오를 이끌어 온 그는 감히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대부라고 불릴만한 존재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지금까지 만들어 온 영화들은 일본 내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그 작품성이 높게 평가되는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그의 은퇴작인 [바람이 분다]는 전작들과 달리 많은 이들에게 쓴 소리를 듣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이다. 픽션이 일부 가미되긴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렇다면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는 1903년부터 1982년까지 생존한 인물로 일본 근대 문화의 진보와 역사를 함께한 인물이다. 1903년부터 1982년까지의 삶, 거시적으로는 수많은 피해를 야기한 세계 2차 대전이 있었던 시기이며 특히나 한국에게는 뼈아픈 식민지 역사를 포함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비행기였던, 우리에겐 카미카제 부대의 비행기로도 익숙한 제로센을 설계한 사람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영화는 전쟁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비판은 올곧은 방향으로 가해져야 날을 보인다. 사실 이 영화가 과거에 발생한 2차 대전, 혹은 전쟁 그 자체를 미화하고 있지는 않다. 극 중 등장하는 독일인의 입에서는 분명히 전쟁으로 인해 독일과 일본이 파멸할 것이라는 대사가 언급된다. 극 중 등장하는 지로 또한 자신이 전투기밖에 만들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여태껏 수많은 반전 영화들을 만들어 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갑작스레 전쟁을 찬동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도 우스운 말이다. 하지만 비록 이 영화가 전쟁을 미화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하더라도 비판의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로센이라는 존재, 그리고 호리코시 지로라는 소재를 다룸에 있어 시대적 반성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로라는 인물을 전쟁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자신의 꿈을 좇는 인물로 묘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전투기는 전쟁 무기로 사용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또한 그가 근무했던 미쓰비시는 강제 징용의 문제로 많은 이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물론 이에 대하여 기술 자체는 그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변론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기술을 만든 자는 문제가 아니며 그 기술을 악용한 주체가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에 흔히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노벨이 예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노벨과 지로의 큰 차이는 지로는 자신이 만들게 될 비행기가 전쟁 무기로 악용될 것을 뚜렷이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1961년 미국의 한 지역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이루어진다. 이 실험은 피실험자들에게 실험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그들을 한명씩 밀폐된 공간에 투입한다. 그 공간의 한 면은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너편에는 또다른 피실험자가 존재한다. 다만 건너편의 사람들은 이쪽을 볼 수 없도록 유리는 특수 처리가 되어 있다. 방 안에는 전압의 크기가 적힌 버튼들이 여러개 존재한다. 이제 실험자가 버튼 앞의 피실험자에게 실험의 내용을 알려준다. “이 실험은 학습능력에 대한 실험입니다. 유리 건너편의 다른 피실험자가 질문에 대해 오답을 말할 때마다 앞의 전압 버튼을 눌러주세요. 처음에는 가장 전압이 낮은 것부터 시작해 오답이 누적될 때마다 점점 전압의 세기를 올려주세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실험이 진행된다. 하지만 건너편의 사람은 계속해서 오답을 말하고 전압은 점점 올라간다. 제일 마지막 버튼은 450V라고 표시가 되어있으며 아래쪽에는 해골마커가 그려져 있다. 이에 실험에 대해 반발을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실험자는 괜찮다며 계속 실험을 진행시키려 한다. 수많은 심리학자들은 이 실험에 대해 극소수만이 마지막 버튼을 누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깨고 피실험자 가운데 총 65%에 달하는 사람들이 치사량인 450V의 버튼을 눌렀다. 물론 버튼을 누르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은 짜여진 상황으로 건너편의 사람은 실제로 전기를 맞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실험은 명령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얼마나 위협적인 결과를 안고 올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탠리 밀그램 실험 상황을 실제라고 가정해보겠다. 버튼을 누른 사람은 명령에 의해 행동했다는 것을 이유로 도덕적인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세계 2차 대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전후에 이루어진 전범들을 대상으로 한 재판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선고된다.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을 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이고, 그에 따라 행위를 저지른 전범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따르면 극 중 호리코시 지로가 시대 상황 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투기를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고 묘사하는 것은 옳지 못한 표현이다. 설령 법적으로 그가 한 행동을 옹호할 수 있을지언정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임은 분명한 것이다.
전쟁에 대한 미화는 없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책임의식 또한 전무하다. “전쟁이 일어났다.”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꿈이라는 추상적 이상향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축소시킨다. 지로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전쟁용으로 사용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최소한 이 영화는 지로가 단지 꿈을 좇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제로센을 만들었다고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본인의 삶을 투여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한들, 그의 삶의 전반을 돌이켜 본들, 전범국의 전범을 소재로 꿈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영화는 피해국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않은 또 다른 가해에 불과하다. 그렇게나 반전을 주장하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러한 부분들을 간과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