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더 랍스터
[더 랍스터]는 [송곳니]라는 문제작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소개란을 살펴보면 장르에 당당히 로맨스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봉되었던 그 어떤 종류의 로맨스 영화보다 독특한 로맨스 영화다. 숲속에 한 호텔이 있다. 심지어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짝’처럼 커플을 매칭해주기도하는 그런 호텔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중대한 룰이 하나 있다. 45일간 호텔에서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패널티가 있다는 점이다.
콜린 퍼렐이 연기하는 주인공 남자는 근시다. 그는 원래 아내가 있었으나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된다. 다시 혼자가 된 그는 개 한 마리를 이끌고 위에서 말한 호텔을 찾는다. 그가 데리고 간 개는 자신의 형이다. 형은 호텔에서 45일간 커플이 되지 못해 개가 되어버린 것이다. 슬프게도 호텔의 직원들 중 누구하나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이 되어 호텔을 떠나기 때문이다. 근시남자는 호텔에서 다른 남자들과 친해진다. 그 중에는 절름발이 남자도 있었고 못생긴 남자도 있었다. 그들 모두 절실한 마음으로 호텔의 룰에 준수하며, 호텔이 강요하는 룰과 규칙을 거부 없이 따른다.
한편 호텔 밖의 숲속에는 또다른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들은 혼자서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쉽게 말하면 솔로부대들이다. 영화 속의 가상 세계는 반드시 커플로 살아가야만 하는 강압적 사랑의 세계인데, 솔로부대는 그러한 점을 거부한다. 그들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숲속에서 험난한 삶을 살아가지만 사회속의 사람들과 달리 억압에서 자유롭다. 호텔에서는 정기적으로 이들, 숲속 사람들을 사냥하러 나온다. 이때 사냥에서 잡은 솔로들의 숫자만큼 호텔에서의 45일 제한일수가 하루씩 늘어난다. 예를 들어, 호텔에 들어간 사람이 만기일이 하루가 남았다면 내일 당장 동물이 되겠지만, 그날 사냥에서 솔로들을 5명 사냥한다면 여유 기간이 5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송곳니]에서도 그랬듯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비유와 상징을 영화 곳곳에 심어놓는다.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사랑을 강요하는 사회다. 도시에서도 솔로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경비대가 돌아다닌다. 호텔에서는 솔로일 때 안 좋은 점과 커플이 되면 좋은 점을 반복적으로 사람들에게 교육, 세뇌시킨다. 사랑은 자유로운 연애와 감정을 통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가상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과연 그러한 강제적인 연애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로 돌아가 보자. 당연히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위와 같은 강제력 있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무언의 강제성이라면 확실히 존재한다. 멀리 해외로 떠날 필요도 없이 국내에서도 그러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혼이라는 것은 법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돈이 없어 싱글족이 되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지만 아직도 많은 싱글들이 연휴 때마다 친척들의 눈총을 받는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지만 집안끼리 강제로 혼인을 맺는 경우도 아직 적지 않다. 장기간 솔로로 지내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 또한 “저 사람은 혼자 사는 걸 원하나보다.”라는 생각보다는 “저 사람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라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무엇일까? [더 랍스터]의 호화 호텔? 아니다. 결혼 중매 사이트다.
돈이 꽤나 있는 사람들은 ‘결혼해 듀오’등의 결혼 매칭 사이트들을 이용한다. 이러한 결혼 매칭 사이트는 상호간의 배경을 보고 적절한 두 상대를 매칭 시킨다. 어차피 처음 만나는 상대인데 개개인의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외모, 직업, 재력 등이 각각을 결정짓는 프레임이다. 이미 인터넷 상에서도 많이 퍼진 사실이지만 위와 같은 수치들을 종합해 각각의 등급을 매기고 같은 등급의 사람들을 매칭시키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재미난 점은 [더 랍스터]에서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커플을 매칭시키지는 않지만 참가자들 스스로가 유사성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점이다.
절름발이 남성은 절름발이인 여자를 만났으나 잘 안됐다는 경험을 말한다. 그는 이번 호텔에서는 코피 흘리는 여성을 만나 그녀와 잘 성사되기 위해 거짓으로 코피를 자주 흘리는 척을 한다. 주인공인 근시 남성도 무정한 여자의 눈에 잘 띄기 위해 감정이 없는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그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여성 또한 자신과 같은 근시 여성이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우리는 정말 유사한 사람만을 만나 사랑을 해야 하는가? 유사한 재력과 유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정말 행복한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일까.
한편, 숲속으로 들어가 솔로부대의 삶을 살펴보자. 그들은 스스로를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반란군, 자유로운 자들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룰을 강요한다. 애정행각으로 의심되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행위를 했다가는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솔로부대에 들어온 이상, 강제적인 솔로의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자연스러운 사랑은 찾기 힘들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삶을 “싱글족”으로 규정짓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은 주변에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등장했을때마저 그들에게 큰 장애물로 작용을 하게 된다.
영화 내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강압적인 사고와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사회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호텔에 처음 들어갈 때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고를 수 있을뿐, 양성애자라는 선택지를 마련해놓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을 커플과 싱글로 이분화시켜 일을 처리한다. 자신과 닮은 사람, 아닌 사람으로 구분해 사랑의 척도를 찾는다. 진정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러한 시스템과 강박에서 벗어나야만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것이 문제가 있는지조차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더 랍스터]는 하나의 우화다. 단순 로맨스 영화로 치부하기엔 엄청난 양의 비유들이 극을 지배한다. 이 영화에 대한 해석 또한 다양하고 또 각각의 관객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암시들 또한 여러 곳에 포진해있다. 영화를 보면서 가상세계에의 어처구니없는 제도들에 조소가 나오다가도, 문득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참 공허한 기분이 든다. 여담으로, 영화의 제목인 [더 랍스터]는 주인공이 호텔에 들어갈 때 만약 자신이 실패하면 ‘랍스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때 언급한 이유로는 랍스터가 생애 주기 중 가장 오랜 시간 성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또 그 피가 귀족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한편, 랍스터는 시력이 매우 떨어지는 생물이다. 이는 근시인 주인공과도 매칭이 되는데 어쩌면 동물을 고를때마저도 그는 자신과 유사한 대상을 고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