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시누 Jul 07. 2016

단순한 줄타기가 아니다

영화 리뷰: 하늘을 걷는 남자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칭하는 ‘필립’은 줄타기 전문가이다. 물론 그 밖에 저글링 던지기나 외발 자전거 타기 등의 잔재주도 부릴 줄 아는 재주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여타의 다른 곡예사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그는 스스로 줄을 타는 행위에 대해 세상에 대한 반란(coup)이라고 칭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딜 가든 자신의 줄을 매달 장소를 결정하고 그 장소에서 줄을 타고자한다. 그러한 장소는 때로 불법적인 장소, 혹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높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기행이 이어지던 중, 계시처럼 그는 우연히 하나의 신문기사를 발견한다. 바로 세계무역센터가 곧 완공된다는 소식이었다.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하는 ‘필립’은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한 사람이다. 그는 줄타기를 단순 곡예, 혹은 밥벌이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그가 줄을 타러 나간다고 당당히 고백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필립을 집에서 내쫓았다. 파파 루디는 자신에게 줄타기를 배우러 온 남성이 곡예로 밥벌이를 하기위해 찾아온 것이라 예상했으나 필립이 바라보고 있는 곳는 그 너머였다. 그에게 줄타기는 마치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고흐가 그림을 그려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이자 철학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행동이라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또 목숨까지도 내놓고 행동할 수 있었다.





          예술을 정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는 사실 오랜 과거에서부터 이어지던 고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대에 들어서 유독 예술의 범주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행위 예술부터 시작해 난해하면서도 마이너한 예술에 이르기까지 범주를 나누기도 힘들 정도로 현대에는 다양한 예술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범주의 예술에도 공통점이 존재하는 데, 바로 목적성과 상징성이라는 두 가지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알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필립의 줄타기에는 목적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기존 체제에 대한 반발의 마음이기도 하고, 두 번째로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이 두 가지 사실에다 스스로를 하나의 상징으로 던짐으로서 그 위험한 고공 줄타기를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목적성은 얼마만큼이나 성공적이었는가? 사실 그의 도전이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와 가까운 동료들마저 이 도전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다. 그와 일면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더 그랬을 것이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누군가가 그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극구 손사래를 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침내 이 위험천만한 도전을 완수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친다. 이것은 단순 위험천만한 도전이 종료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의 박수가 아닌 그러한 행위 자체에 대한 박수이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의 마음을 울림으로 터져 나온 박수이다. 도전이 끝나고 그를 체포하지 못해 안달이 났던 경찰도 필립을 향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행동이 많은 이들이 마음을 울리고 끓어오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면 그 자체로 그의 목적성은 달성된 것이다.





          영화 초반에 많은 미국인들은 세계무역센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도시 한가운데 저렇게 흉물스러운 빌딩을 세워다 놓다니." 이는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당시에도 나온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빌딩의 완공과 동시에 필립이 이와 같은 엄청난 쇼를 보여줌에 따라 세계무역센터는 또 하나의 상징성을 가진 장소로 발돋움하게 된다. 쌍둥이 빌딩을 바라보며 그 날 펼쳐졌던 엄청난 고공 줄타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특히 그 광경을 직접 생생히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새삼 그 두 거대한 빌딩을 통해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영화를 보며 이 장대한 계획의 핵심 초점과 별개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장면 더 있다. 하나는 파파 루디가 그에게 가르쳐 준 “마지막 세 걸음을 조심해라.”라는 장면과 이러한 무모한 도전에서도 발밑에서, 혹은 그의 곁에서 끝까지 그를 응원하는 필립의 동료들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우선 마지막 세 걸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줄타기꾼들이 가장 위험한 구간은 도착지까지 세 걸음을 앞두고 있을 때라고 하던 파파 루디의 가르침. 마지막 세 걸음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영화의 말미에 그가 쌍둥이 빌딩에 도전할 때도 다시 한 번 필립의 뇌리에 각인된다. 비록 줄타기뿐만이 아니다. 스포츠계, 혹은 그 어떤 종류의 도전이라도 가장 위험한 부분은 골에 다다르기 직전이다. 마라톤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지점도 도착지에 가까워 졌을 때라고하니 마음을 컨트롤 하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는 비록 줄타기에 한정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하더라도 잊어서는 안 될 이 영화가 전하는 중요한 충고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그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종반부에 다다르며 필립의 쌍둥이 빌딩에 대한 집착은 얼핏 광기처럼 느껴기도 한다. 그를 돕던 주변의 동료들도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심해지는 필립의 기이한 행동에 우려의 기색을 한다. 어떤 시각으로 본다면 필립 도전은 친구로서 뜯어 말려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필립의 도전을, 아니 필립 자체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존중하며, 그를 돕고, 그와 함께 행동한다. 만약 필립에게 이처럼 끈끈한 신뢰로 묶인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의 도전은 타워의 꼭대기에까지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그를 잡고 말리는 것도 친구의 역할이지만, 그가 진정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자 할 때 그의 뒤에서 열심히 그를 응원하고 적극 지원해주는 것도 진정한 친구의 모습이다. 이처럼 뜻을 같이하고 마지막까지 그를 지원해주는 여러 친구들이 있는 필립이 새삼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하늘을 걷는 남자’는 새삼 많은 걸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여타 픽션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 각본 구성과 몰입력을 가진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행해졌던 필립의 도전, 그리고 그 과정은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환기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당시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했던 이들의 마음조차 흔들만한 힘이 있는 영화였다. 필립의 인생에 있어서의 줄타기란 영화를 본 누군가의 삶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사업판에 뛰어드는 일이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줄타기는 세상의 모든 불가능한 도전들을 응원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상영관의 문턱에서 각자가 자신이 걸을 하늘을 떠올려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비되고 잊혀지는 콘텐츠 속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