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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Jul 09. 2016

모든 것을 잠식하는 우울, 멜랑콜리아

영화 리뷰: 멜랑콜리아




          현대인의 가장 큰 질병 가운데 하나인 우울증. 우울증은 이제 터부시되기보다는 공공연한 사회 현상의 하나이해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국립 서울 병원에 의하면 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우울증 비율이 3년 전인 2012년에 비해 4% 가까이 상승했다고 한다. 사실 현대에 들어서기 이전 시기에도 우울증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그저 당시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정신적 병력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우울증은 인간 본연이 가진 인류 역사와 흐름을 같이하는 거대한 역사로 존재한다.





          [멜랑콜리아]는 [안티 크라이스트]와 [님포매니악]과 더불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우울 3부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다. 극은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뉜다. 결혼을 맞이한 신부 '저스틴'의 이야기와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사는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두 축이다. 저스틴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면 저스틴은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실력자이고 오늘 결혼을 하게 된 행복한 신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엄청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 환자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그녀를 엄청나게 결국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고 만다. 제목의 ‘멜랑콜리아’가 상징하는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마치 극 중 그녀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우울증과 그에 동반된 신경과민으로 인해 자신을 들볶는 직장 상사에게 반발한다. 그 결과로 그녀는 직장을 잃게 되고 그녀의 사회적 지위는 박탈되고 만다. 한편, 그녀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우울증으로 인해 생전 처음 보는 외간 남자와 잠자리까지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그녀의 결혼 생활은 하루도 못가 종지부를 찍는다. 불과 몇 시간 전 함께 행복한 미래를 도모했던 남편은 그런 그녀의 증세에 고작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식장을 떠나간다. 그녀는 이제 연인마저 잃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감정들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 실제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트러블을 겪는 경우가 꽤 있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주위의 모든 것을 잠식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클레어는 저스틴의 언니다. 어마어마한 부자의 아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그녀는 전형적인 평범한 인물이기도 하다.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자신에게 다가올 위협에 대한 겁도 많다. 그녀는 우울증 환자는 아니다. 그녀는 저스틴의 우울증 증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동생을 매번 보듬는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과 자신 주변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 그녀의 삶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는 딱 하나다. 먼 하늘에서부터 날아오는 미지의 별, ‘멜랑콜리아’다. 멜랑콜리아라는 거대한 별은 지구를 향해 서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다가온다. 과학자들은 이 별이 지구와 충돌할 일은 없다고 대중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조금씩 커져가는 이 별의 모습은 클레어의 마음 속의 불안감마저 조금씩 증폭시키고 있었다.


 



          클레어의 불안한 예측은 적중했고, 그로 인한 비극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이러한 비극 속에서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에 떤다. 그녀가 아끼던 주변의 모든 것들, 가족들과 소중한 것들이 모두 증발되어 버릴 생각에 클레어는 절망적이다. 하지만 되려 저스틴은 담담하다. 1부에서 과도한 우울증에 허덕이며 공포감에 떨던 그녀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거대한 존재의 도래에 대해서는 일말의 공포감도 표현하지 않는다. 저스틴에게 진정 공포스러운 것은 하루하루를 괴롭게 하는 그녀 마음속의 무언가지 외부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가 아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별이 지구를 집어삼키듯 저스틴에게는 우울증이라는 마음 속의 거대한 구멍이 그녀를 집어 삼킬 뿐이었다.



          ‘멜랑콜리아’라는 이 별의 이름을 번역하면 ‘우울증’이 된다. 1부에서 저스틴의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바라보던 모두는 결국 2부에서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별에 잠식당한다. 어쩌면 우울증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고 누구나 그에 잠식당할 수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멜랑콜리아의 모습처럼 현대인들도 조금씩 우울증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1부에서 표현된 것처럼, 또 2부에서 표현된 것처럼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이다. 누구보다도 이성적이었던 클레어의 남편이 보인 행동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시사하는 가장 절망적인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영화내의 등장인물들을 비극적 결말로 이끄는 끔찍한 멜랑콜리아. 이것은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원래 우울한 내용의 영화를 많이 만들기는하나 이 영화만큼 우울함에 대해 직접적으로 연출한 영화는 없었다. 영화는 오직 '우울'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만을 위해 전력을 쏟아붓고 있으며 심지어 영화의 초반부에 모든 내용을 다 집어넣으며 이 영화가 절망적이고 우울한 내용이 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려주기까지 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우울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모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이 얼마나 우울하고 절망적인 메시지의 영화인가.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영화의 장면 하나하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이는 비극과 절망, 그리고 나락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예술이 가진 아이러니와도 맞물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우면서도 괴로운 영화, 멜랑콜리아는 아무래도 오랜 기간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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