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화 산업, 그를 관통하는 영비법
한국의 영화 산업은 뚜렷한 특징이 있다. 바로 배급과 상영의 결합이라는 점이다. 이를 흔히 수직 계열화라고 부른다. CJ나 롯데 등 현재 국내의 대규모 영화 배급사는 자사의 상영관을 보유하고 있다. 즉, CJ는 CGV를, 롯데는 롯데시네마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 탓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해왔다.
배급이란 영화의 판권을 각 극장들에게 판매하는 업무이고, 상영이란 주어진 영화들을 극장에서 고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배급과 상영 사이에는 미묘한 힘의 질서가 작용해왔다. 흥행이 예상되는 영화는 상영 측에서 어떻게든 배급권을 따오려고 노력하고, 흥행이 불안정한 영화는 배급사 쪽에서 극장에 어렵게 부탁해서 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배급과 상영이 결합되어 있다면 이 힘의 질서가 어떻게 작용할까? 이같은 경우에는 힘의 질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자사가 배급하는 영화를 자기 상영관에서 틀면 되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비법’이라는 새로운 놈이 얼굴을 비췄다. 더불어민주당의 도종환 의원이 발의한 ‘영비법’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법안에는 여러 세부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데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영화배급업자 또는 상영업자가 대기업에 해당하는 경우 배급과 상영을 겸업할수 없도록 한다“라는 항목일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배급과 상영이 겸업되는 것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을 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정적 인식과 달리 배급과 상영이 결합됨에 따라 나타나는 장점도 있다. 이는 판매자와 소비자 쌍방으로 작용한다. 우선 판매자 입장에서는 영화 티켓 1장의 수익에서 먹을 수 있는 파이가 늘어난다. 기존에는 영화 티켓이 1장 판매되면 극장측, 배급측, 그리고 투자자들이 수익을 나눠 먹는다. 하지만 배급과 상영이 합쳐진 형태라면 투자자들에게 할당하는 수익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을 판매자가 먹을 수 있다.
이러한 판매자 수익의 증가에 따라 소비자도 이득을 본다. 그것은 바로 영화 티켓 가격이 저가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물론 근래 들어 영화 티켓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많은 소비자들이 불만을 토해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비해 국내의 영화 티켓 가격은 꽤나 저렴한 편이다. 만약 ‘영비법’이 통과되어 배급사와 상영사가 분리가 된다면 단언컨대 영화 티켓의 가격은 상승할 것이다. 판매측이 가져가는 순수익이 감소하게 되고 그러한 손실분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영화 티켓의 가격을 올리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렇다고 배급과 상영의 수직 계열화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 배급사, 혹은 영화 상영사 또한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 기업이다. 즉, 기업 가치의 극대화와 매출의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사가 배급한 영화를 상영할 경우, 일반 영화를 상영할 때보다 훨씬 많은 파이의 몫을 가져갈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높은 수준의 이윤 추구를 위해 당연히 자사 배급 영화 위주로 상영을 배치할 것이고 영화관은 일부 영화로 도배가 돼버린다. 소위 말하는 ‘독점의 폐해’가 드러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개를 훔치는 방법]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당시 작품 자체가 좋은 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시장]등의 수직계열화의 영향을 받은 영화에 의해 상영관 확보에 실패했고 제대로 그 모습을 보이지도 못한 채 스크린을 내려야만 했다. 후일 이러한 문제가 주목됨에 따라 다시 재상영을 하기는 했으나 어중간한 위치에 포지셔닝 됨에 따라 재상영마저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처럼 수직계열화가 일어나게 되면 영화의 다양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소규모 자본의 영화들은 제대로 영화를 선보이지 못하고 관객들 역시 원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를 잃게 된다.
사실 이러한 수직 계열화는 할리우드에서 먼저 보여진바 있다. 과거 할리우드에서는 배급, 상영뿐만 아니라 배우들까지 모두 회사에 소속시킴으로서 한 회사에서 영화를 찍고, 배급하고 상영까지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의 산업 구조를 선보였다. 하지만 1940년대에 들어 이러한 행태는 불법으로 판결된다. ‘파라마운트 판례’라고 불리는 이 재판 결과는 한 회사가 제작, 배급, 상영을 독점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물론 후일 이러한 판례를 피하기 위해 해외직접배급이라는 방법이 등장하지만 실질적인 독점 행태는 1940년대에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비법’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이 법이 올해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부터 언급만 되며 흐지부지 진행된 법이, 지금에 와서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로 인한 문제들 역시 심하게 곪아 부르튼 상태라는 뜻이 아닐까. 향후 국내의 영화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던 간에 보다 다양한 영화가 제공되고 그 속에서 자가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될 수 있길 바란다.
※ 사진출처: 싱글리스트, 데일리팟, 미디어스, The Hollywood Renegades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