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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Feb 02. 2017

직선적 삶에서 망원적 삶으로

영화 리뷰 : 라이언

 


        의도치 않게 먼 타지에 떨어져 고향을 찾는 이야기, 혹은 사람을 놓쳐 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많은 작품에서 차용되는 소재다. 과거 <엄마 찾아 삼만리>나 <머나먼 여정>이 대표적이다, <라이언>도 그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잠깐의 실수로 머나먼 타지에서 미아가 된 ‘사루’(써니 파와르). 그는 성인이 된 후 고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그가 인도에서 호주까지 넘어간 7,600km의 초장거리 미아라는 점. 둘째는 다섯 살 때 실종된 이후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는 점이다. 놀라운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사루의 삶을 중심으로 극을 풀어나간다.


       이야기는 인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사루는 어머니와 형의 사랑을 받는 다섯 살 소년이다. 형편은 어렵지만 가족들과의 소박한 일상이 즐겁다. 하루는 일을 하러 역으로 향하는 형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 형이 안 된다고 하지만 동생은 고집스럽다. 사루는 결국 기차역까지 따라가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밤이 되자 피로감에 뻗어버린다. 동생에게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뒤 형은 일을 하러 떠난다. 밤이 되자 날이 쌀쌀해진다. 추위를 피해 아무 기차에 몸을 실은 사루는 깜빡 잠들어 버리고 그 사이 기차는 출발해 버린다.  



       사루는 집을 나선 이후 직선적인 세계를 강요당한다. 첫 씬에서 기차가 터널로 들어간 것처럼 그의 삶에도 어둠이 찾아온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열차의 긴 복도에 앉아 사루는 절규한다. 캘커타에 들어선 이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도시에서 아이들은 악인의 사냥감에 불과했다. 성인 사루 역의 ‘데브 파텔’이 출연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악인들의 마수에 빠진 아이들의 운명은 가혹하다. 삶과 죽음의 일직선상에서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인도의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비극은 사루가 호주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등 떠민다. 이야기의 1부는 주인공에게 강요된 ‘직선적 삶’을 비춰준다.


       이 같은 절망 속에서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다. 호주에 사는 부부, ‘존’(데이비드 웬헴)과 ‘수’(니콜 키드먼)가 사루를 입양하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부부의 적극적 애정 속에서 사루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호텔 경영을 배우기 위해 멜버른으로 떠난 그는 ‘루시’(루니 마라)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 중 많은 수는 인도 출신의 학생들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거듭하며 사루의 마음속에는 점점 고향에 대한 애착이 피어오른다. 고향에 대한 몇 가지 단서들과 구글 어스에 대한 정보를 들은 그는 고향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집착은 결국 연인이었던 루시와의 결별, 가족 간의 불화, 본업의 상실로 치닫는다. 사루는 또 다시 양자택일의 직선적 상황에 던져졌다. 호주냐 인도냐, 과거냐 현재냐.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루는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양어머니였던 수가 불임인 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입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불임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보다 이미 태어난 생명들에게 또 다른 길을 주고 싶었기에 입양을 선택한 것이라 말한다. 절망적 상황 속의 아이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부의 선택은 직선적 선로로 흘러가던 사루의 인생에 또 다른 방향을 열어 주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 속에서 사루는 번뜩임과 함께 구글 어스를 통해 마침내 자신의 고향을 찾아낸다.


       친어머니와 친형의 환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던 그는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어 낸다. 그는 더 이상 양자택일을 하지 않는다. 그리워하던 혈육으로서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가슴으로 키워낸 삶 속의 어머니 둘을 모두 포용한다.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친형과 사이가 나빴던 입양아 형을 모두 포용한다. 한때 인도냐 호주냐의 질문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이제 직선적인 세계관에서 탈피해 구글 어스처럼 망원(望遠)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2부는 갇혀있던 사루를 갑갑한 터널 속에서 해방시켜 준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는다.



        가스 데이비스 감독은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직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지 못한 수많은 사루들에 주목한다. 사루는 혼자의 힘으로는 닥친 위기를 극복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기적적인 행운이 뒤따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구원한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수와 존 부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비스 감독은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말한다. 직선적 세계에서 방황하는 그들을 망원적 세계로 이끌어 낼 제 2의 수와 존을 향해서. 누구나 수가 될 수 있고 존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본 글은 [디 아티스트 매거진]에 칼럼으로 기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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