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복싱을 좋아합니다. 현대 격투 스포츠 가운데 강함을 따지자면 종합격투기(MMA)가 가장 우세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복싱을 좋아합니다. 왤까요? 복싱은 격투기의 '근본'이며, 동시에 '클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각의 링 위에서 오직 두 주먹만을 들고 맞서는 모습에는 어떤 남자의 원초적인 인간성과 형식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사실 ‘강함’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깨진 병이나 칼, 쇠파이프가 날아다니는 뒷골목 싸움에서는 훈련된 격투기 선수보다 무기를 든 적이 더 위협적일 수 있겠죠. 하물며 깡패가 무서운 이유는 강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잃을 게 없는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복싱이나 MMA 같은 격투 스포츠는 '강함' 자체를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규칙적이고 제한된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총든 놈이 제일 강하겠죠. 그런 측면에서 저는 어떤 수단의 순수한 강함을 논하는 것보다는 각 격투기 종목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논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싱을 다양한 관점에서 논해 보고 싶습니다. 먼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까요?
선사시대부터 생각해 보면 과연 인간이 발차기를 하면서 싸웠을까요? 아니면 두 주먹으로 치고받으면서 싸웠을까요? 인류가 문명화되기 전부터 존재해 온 가장 오래된 싸움의 형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MMA나 그레플링 베이스의 격투기도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까요? 복싱은 가난한 동네에서 피어난 민중의 스포츠입니다. 쿠바, 필리핀, 멕시코, 미국의 흑인 사회 등에서 복싱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계급을 넘는 통로였습니다. 전설적인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는 흑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었고, 복싱은 단순한 경기를 넘어 문화적 저항의 도구였습니다.
복싱은 국가 이미지와 정치적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왔습니다. 쿠바는 체제 선전 수단으로 복싱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죠. 마지막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복싱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거대한 산업입니다. 대형 경기 한 번에 수천억 원이 오갑니다. 흥행성, 스토리텔링, 언더독의 드라마는 여전히 복싱이 상업적으로도 예술처럼 팔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또한, 많은 빈곤층 아이들에게 사회 이동 수단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모든 격투기는 각기 다른 제한된 룰에 의해서 치러집니다. 격투기를 보는 관점 측면에서
'무엇으로 싸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의 관점으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특히 복싱은 두 주먹만을 가지고 싸우죠. 제한된 공간과 조건 속에서 자신의 기술, 타이밍, 거리, 리듬, 심리전 등을 얼마나 정제되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물론,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효율로만 보자면 MMA가 가장 높겠죠. 여기서 중요한 건 '효율'이 아니라 '형식미와 과정'입니다. 상대의 펀치를 슬립으로 회피하고, 카운터로 적중시키는 순간의 예술. 12라운드 동안 리듬을 유지하고 상대의 패턴을 읽어가며 두뇌로 싸우는 지략 전. 단순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겼는가, 얼마나 우아하게 또 치열하게, 통제된 방식으로 싸웠는가가 평가됩니다.
그래서 복싱이 왜 특별할까요?
복싱 경기를 보다 보면, 여타 격투기와 다른 어떤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유독 복서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예술이네~' 같은 말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카넬로 알바레즈의 더킹과 위빙은 춤과도 같고, 빠른 발놀림과 손놀림은 마치 재즈의 즉흥 연주 같습니다. 베토벤, 쇼팽, 바흐의 곡처럼, 복싱도 정해진 악보(룰) 안에서 얼마나 섬세하게, 깊이 있게 표현하는지가 관건입니다. 왼쪽 바디 훅 하나를 위해 수많은 페인트와 리듬 조정이 선행되는 그 과정. 그 한 방을 위한 예술적 구성. 이런 장면은 복싱이기에 가능한, 복싱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보적인 경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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