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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May 12. 2023

죽고 나면 남길 것

책을 쓰기로 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죽고 나면 아무 의미 없다.

사진 앨범, 소중히 여기던 옷, 시계, 반지 다 의미 없다.


어느 날부턴가 길가에 난 풀을 신경 쓰고

출근길마다 본다면

어느 순간 기억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허나 내가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지 남에게는 그냥 한낱 풀떼기일 뿐이다.



생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대부분이 다 그럴 거다. 

내가 죽어서 묻히면 관이, 화장하면 뼈단지가 우리 가족에게는 소중하겠다만

이 또한 제삼자에겐 그냥 단순 나무통이고 도자기통일뿐이다.

우리 가족조차 신경 쓰지 않는 시기가 오면 누군가는 무심히 쓰레기통에 넣듯 처리할지도 모른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는 10년 터울로 돌아가셨다.

생전의 물품들은 아버지가 방에 소중히 보관하시고 있기도 하고, 부피가 큰 것 중 일부는 그냥 창고에 들어가 있다.

먼지가 쌓이고, 박스 위에 곰팡이가 쓴 것도 있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 집이야 시골집이라서 넓고 창고도 있으니 이렇게라도 보관을 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냥 결국 다 버릴 거다.  


아버지는 모든 안 버리는 사람이다.  

오래되고 낡아 버릴 법도한 의자, 책, 감사패, 상장, 사진, 이어폰, 카세트 테이프, 옷, 출처를 알 수 없는 나무토막, 장식품, 배지... 모든 그냥 안 버리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늘 그런 걸 뭣하러 가지고 있냐며 집안 어지럽다고 버리고 싶어 하신다. 

어느 집이나 대동소이하겠지만, 수십 년을 같이 산 부부간에도 이런 일에서는 이견을 좁힐 수가 없다.   


유전인지 나도 모든 잘 안 버리려는 습성이 있다. 

지금 쓰는 시계도 14년도에 캐나다에서 첫 알바비로 샀던 건데 9년이 넘었고, 폰도 7년(아이폰 se1세대), 이어폰도 4년이 넘었다. 


오랫동안 써서 소중하다만, 그냥 딱 거기 까지다.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나면 그냥 철 지난 쓰레기일 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이 본능적으로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듯 나도 어떤 의무감이 느껴졌다.


어떤 걸 남겨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업적, 지위, 명예 그런 건 누가 돈 준다고 해도 싫다.


아주 은밀하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조금 더 인상적이게 기억되고 싶다.


땅을 사서 돌을 세우고, 정으로 쳐서 곰탱이,호랭이 새겨볼까…

뭐가 좋을까.


고민 끝에 결론 냈다.


책을 남겨보자. 

내가 쓴 책.

내 이름으로 낸 책.

내 이야기가 적힌 한 권의 책. 


왜 하필 책이냐.

일단 '작가'라는 단어가 너무 멋있다.

또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쓴다. 단순하다.

책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남긴다는 것에 의미도 있고,

또 글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데 훌륭한 것 아닌가.


이런 상상도 해본다. 

혹시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면,

그리고 수 십 년 후, 임종을 앞두고 침대에 누워 자식에게 말한다. 

'다른 건 다 버리고, 내가 쓴 책 한 권만 가지고 있어라' 


만약 손자가 있다면,

'할애비 이야기다' 하며 슥 주고 떠나는 거다.   

죽기 전에 속으로 '나 좀 멋진데?' 하고 혼자 웃진 않을까. 


나는 글 쓰는 건 좋아하지만 문장이 수려하거나 멋있게 쓸 줄은 모른다.

다만, 김영하 작가가 말하길,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이야기는 좋은 글이라 한다.


어떤 글은 미사여구로 잘 꾸며진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다.


어느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자기만의 굴에 들어가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마치 고해성사하듯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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