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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Aug 28. 2023

거대 메뚜기를 씹으며 크리미 하다는 베어그릴스를 보며

서바이벌 전문가로 유명한 베어그릴스는 야생으로 떠나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존 전문가답게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선보인다.

불을 지피거나 신발 매듭을 이용해 덫을 만들기도 하고, 조난당했을 때 하늘의 별을 보며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 또 밀림에서 야생동물로부터의 공격을 피하는 안전가옥 짓는 법이나 눈으로 덮인 산에서 구조될 때까지 체온을 보호하는 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과학적 근거를 활용해 자신의 생존 기술을 설명하고 직접 몸으로 증명한다.


베어그릴스의 진면목은 생존 에너지 섭취에서 볼 수 있다. ‘생존 전문가 베어그릴스’ 보다 오히려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먹방 베어그릴스’으로 더 유명해졌을 정도다.

추운 얼음지방에서 죽어 있는 순록의 심장을 꺼내 생으로 씹어먹거나,

야크의 눈알을 보며 커다란 대리석 같다며 입맛을 다시며 씹어먹는다.

사막에서 낙타의 배를 갈라 위 안에서 낙타가 씹어먹은 풀을 손으로 쥐어짜 수분을 섭취한 적도 있다.

밀림에서는 쥐를 잡아 중국에서는 쥐의 뇌를 파먹기도 한다며, “음~ 애피타이저네요”하며 콩알만 한 쥐의 뇌를 긁어먹는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베어그릴스가 밀림에서 메뚜기를 발견하곤 낼름 산 채로 씹어먹었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거대한 메뚜기를 잡아 산채로 날개까지 와구와구 씹어먹으며 '크리미하다' 그의 모습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이 인간의 진정한 생존 기술은 흙탕물을 정수하거나 불을 지피는 능력이 아니라 저 말도 안 되는 미친 긍정적 태도 아닌가? "


그는 알래스카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낚아채 팔딱거리는 연어의 옆구리를 크게 베어 물곤 신선하다며 기뻐한다.

나였으면 아무리 신선해도 비리다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생으로 통채로 씹어 먹어야 하는 거지 같은 현실을 탓하거나 괴로워했을 텐데 말이다.


자세히 보니, 그가 모든 상황에 과하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걸핏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풀에 베인 작은 상처가 곪아 죽게 된다거나, 고여있는 물을 잘 못 마셨을 때 배탈이나 오히려 탈수로 죽을 수도 있다며 늘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비관적이면서도 낙관적이다.


무엇이 그를 비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를 살아남게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른다.

다만, 그를 보면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베어그릴스가 메뚜기를 씹어 먹는 걸 보다가 삶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사유하게 돼버렸다. 하여간 내가 잡생각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 생각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다.  

나치 산하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 정신과 전문의가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3년간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기술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과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시련을 마주하고 이겨내는 사람들을 보며 분석한 글이다.

참고로 작가 빅터 프랭클은 이를 통해 자신만의 정신 치료법을 창안해 정신 의학에도 큰 공헌을 했다. 그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에 이은 정신 치료법의 제3 학파로 불리는 로고테라피를 통해 실존주의 정신 치료법의 핵심인물이 된다.


베어그릴스의 행동과 이 책의 어떤 일화에 묘한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 책이 퍽하고 떠올랐다.

작가가 아우슈비츠에 잡혀온 다음 날 아침, 먼저 잡혀온 동료가 몰래 작가에게 찾아와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가능하면 매일 면도를 하시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잊지 말게, 그리고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을 좋아 보이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네”


왜 그렇게 하라고 했을까. 

늙고 병들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수용소에서는 가능한 젊고 건강해 보여야 한다. 발 뒤꿈치에 물집이라도 나서 절뚝이는 날에는 나치 대원이 아무 표정 없이 망가진 물건 버리듯 가스실로 보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스실에 나치 대원이 깡통 몇 개를 굴뚝에서 떨어뜨리면 바퀴벌레가 잡히듯 400명의 사람들이 손톱이 다 뽑히도록 괴로워 벽을 긁어대다가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수감된 동료들이 화장터로 이고가 불로 태운다.


강제수용소의 모든 현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당연했던 삶의 목표들은 그곳에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미래를 박탈당한 인간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마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우리 세대의 사회처럼 말이다.

인간은 철저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적 자유는 어떨까?


작가 프랭클 박사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내면의 자유’만은 그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프랭클 박사는 또한 수용소에서 여러 사람들을 봤다. 그저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중에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준 사람도 있다고 한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낙관적인 베어그릴스를 다시 생각해 보자.


그가 처한 극한의 상황은 어쩔 수가 없다. 다만 그는 그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처한 시련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살아남는다.


비극을 직면했을 때 우리는 '낙관'을 통해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낙관적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최선'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옵티멈(Optimum)이라 하는데 여기서 '낙관'이라는 옵티미즘(Optimism)이 유래됐다.  

말의 유래처럼, 최선을 다하려면 낙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함이다.


아우슈비츠에 갇혀 삶은 포기한 사람은 오물 범벅 숙소의 짚 더미 위에서 아무런 반응 없이 누워있는다고 한다. 몇 끼의 식사와 맞바꾼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며 말이다.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허공을 보고 누워있을 바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하고 손으로 볼을 비비는 행위라 할지라도 말이다.


좋아질 리 없는 상황에서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변하는 나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긍정적인 태도다. 어쩔 수 없는 비관적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 해내고, 그와 중에 작은 즐거움을 찾는다.


베어그릴스는 온갖 기괴한 것들을 먹으면서도 이걸 먹으면 일주일은 든든할 것 같다며 끈적한 곤충의 내장맛을 크리미 하다고 하거나, 뱀 구이에서 치킨맛이 난다고 표현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할 상황보다는 이 작은 에너지원들 덕분에 버틸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며 기쁘다고 한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빽빽한 밀림 숲을 헤쳐나가면서도, 우연히 발견한 나무 위에 피어난 한 송이의 작은 보라색 꽃을 보며 이런 지형을 통과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지만 내가 마주친 이 꽃은 마치 신의 사치 같다며 그 순간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함에 기뻐한다.


어서 공원으로 나가 메뚜기와 사슴벌레 애벌레를 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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