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작가 Sep 10. 2023

양 떼 같은 삶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누구나 다 가길래 대학에 갔다가 적당한 나이에 취업을 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른다.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닐 거다.

선조들의 지혜랄까?

모든 때가 있다는 말은 나이가 들면서 해보고 싶은 것들에 점차 제약이 생기면서 더 와닿는다.

공부도, 취미도, 취업도, 결혼도 가능은 하겠다만 일반적으로 ‘제때’라고 하는 시기를 지나치면 곱절은 힘들어지고 결과도 썩 좋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속한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다.


예컨대, 늦어도 20대 중반에서 후반에는 취업을 하고 30대 초반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아이가 대학에 졸업하고 스스로 독립할 나이가 될 때쯤 정년퇴직을 할 나이가 되어 안심할 수 있다.

40대에 늦둥이를 낳아 20년 후 자식에게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때쯤 퇴직을 해버리면 한숨이 절로 나올 거다.

상견례를 하는데 퇴직한 백수 아버지보다는 부장이라도 달고 있는 아저씨가 나을 거다.

직장에 붙어있어야 평생 내보낸 축의금을 조금이라도 회수하겠다는 계산기도 두들겨 볼 수 있겠다.


주변에 동년배들이 뭐 한다더라는 얘기를 반강제로 듣게 될 때

그 시점에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혹시 내 톱니바퀴가 조금 엇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하는 대로, 가는 대로 살면 편하다. 내 앞에 지나간 사람들이 겪어보며 닦아 놓은 길로 가면 편하다.

사람들이 지나간 길은 검증됐다.

검증된 안전한 길에서는 지나치게 큰 고민이 없어도 된다.

깊이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양 떼처럼 살면 편하다.

거대한 무리 속 짐승 수준.

의지 없이 무리 지어 이곳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이곳으로 뛰어다니기 바쁘다.


어떻게 하면 저 무서운 개들을 피할까,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면 개들에게 발목을 물리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전해질지도 모른다.

매서운 바람도 피할 수 있다.


사는 게 뭐 있나, 이런 게 사는 거지.

안전한 길이다.

근데 마음에 안 든다.

팩토리에서 찍혀 나오는 공산품 삶이라고 해야 하나.


인생에 삶의 의미 따위는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사람은 의미는 없지만 수단만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수단은 예컨대 이런 것일 거다.

회사 일을 하면 월급을 받는다. 월급으로 아침 점심 저녁 먹고, 집세를 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회사 생활은 그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그저 수단일 뿐이다. 여기에 의미는 없다. 물론 그 수단마저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도 있겠다만.

한편, 누군가에게는 직업은 그를 살아가게 하는 자부심이자 자존감 그 자체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자에게 이보다 큰 의미 있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의미와 수단은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처럼 느껴진다.

현대 미술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런 거다라고 하면 저런 거다.

삶의 의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수단이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양 떼 무리 속으로 파고들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숨이 허락하는 만큼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때로는 천천히 때론 빠르게

내 속도에 맞춰서 내 길을 가고 싶을 뿐이다.


단순히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이고 싶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다가

그래 공자, 맹자, 부처님, 예수님, 아무나 알려줘 보세요 하고 찾다가  

[숫타니파타]라는 책을 읽게 됐다.

숫타(sutta)는 ‘말’ 그리고 니파타(Nipata)는 '모음'이라는 뜻으로 두 단어가 합해져 ‘말의 모음집’이 됐다고 한다.


가장 최초의 불교 경전이면서 여타 경전과 달리 말 그대로 문자의 기록도 없이 부처님 말씀이 구전에 의해 전달되다가 A.D. 3세기경 <숫타니파타>라는 이름으로 한 군데로 모아졌다고 한다.

 

책의 한 구절을 가져와 봤다.

(석지현, [숫타니파타], 민족사, 2016.)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숲 속에서 자유로운 사슴이 먹이를 구하러 가듯

지혜로운 이는 그 자신의 길만을 생각하면서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살아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살아 있는 것들을 괴롭히지 말라

너무 많은 자녀와 친구를 갖고자 하지도 말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친구나 주위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여

마음이 그들에게 얽히게 되면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다.

친함에는 이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동료들 속에 있으면

앉을 때나 설 때나 걸을 때나 여행할 때조차

항상 지나치게 간섭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그 자신의 뜻을 따라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어느 곳이든 가고 싶은 대로 가라.

해치려는 마음은 갖지 말고

무엇을 얻든 그것으로 만족하라

이 모든 고난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잎이 다 져 버린 저 나무와 같이

세속의 속박을 미련 없이 잘라버리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현명하고 올바른 벗들을 만난다면

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과 무리 지어 함께 가라.

그러나 현명하고 올바른 벗들을 만나지 못하면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돌아가듯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바람과 태양의 열기, 모기떼와 독사들,

이런 것들을 능히 참고 견디며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힘이 센 코끼리가

무리를 떠나 숲 속에서 한가로이 노닐듯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그런 나쁜 벗과는 아예 가까이 말라.

감각적인 쾌락에만 탐닉해 있는

그런 벗과도 가까이하지 말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이 세상 쾌락에만 취하여 안주해 있지 말고

그 마음이 어디에도 붙잡히는 일 없이

지나친 치장은 삼가고 진실만을 말하면서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라

조금도 겁내지 말고 부지런히 나아가라

체력과 지혜를 두루 갖추며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때때로 홀로 앉아 명상을 하며

이 모든 것을 이치에 맞게 행하라

생존 속에는 근심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







이천육백 년도 더 된 분께 가르침을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대 메뚜기를 씹으며 크리미 하다는 베어그릴스를 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