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 : ‘일을 잘한다’를 줄인 ‘일잘’에 영어 접미사 ‘er(~하는 사람)’을 붙인 말로 ‘일을 (겁나)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거두절미하고 내가 회사에서 본 일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아래와 같다.
출근할 때 늘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한다. 상사든 후임이든 가리지 않고 마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밝게 인사하면 인사를 하는 사람도 인사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
인사라는 행위를 함에 있어서 단 하나의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면 하지 않겠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으니 열심히 인사하면 되겠다. 인사는 다다익선이다.
이는 나를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 데도 훌륭한 수단이다.
업무를 할 때 ‘데드라인(속도)’과 ‘정확도’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데드라인을 고른다. 물론, 이 두 개념 모두 중요하고 상황에 따라 정확도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스마트폰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양품률이 낮아 배터리가 뻥뻥 터진다면 오히려 출시를 안 하니만 못하니 말이다.
다만, 대게 오피스 업무에서는 데드라인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교 경영학원론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다. “기업(企業)(꾀할 기, 업업)이 뭘까요?”
먼저, 기업의 기(企)를 풀어보면 사람 인(人)과 그칠 지(止)가 합쳐져 기(企)를 만드는데, 이 그칠 지라는 한자의 뜻을 자세히 보면 초목이 나고 자라는 터, 그러니까 밑바탕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자리에서 나고 자라려면 그 자리에 멈춰 있어야 하기에, 멈추거나 그만둔다는 의미, 그리고 더 나아가 한 곳에 모인다는 뜻도 생겨났다고 했다. 그러니 이를 말미암아 기(企)를 다시 보면, 사람 인과 모인다는 뜻의 기(企)가 되어, 결국 기업이란 사람이 모여 일(業.업)을 한다는 의미라고 하셨다.
다시 데드라인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데드라인은 왜 중요할까? 우리는 회사에서 늘 여럿이 일을 한다. 옆 팀, 타 회사, 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콜라보를 통해 하나의 큰 일을 해치우곤 한다.
전시회를 개최한다면 누군가는 장소를 확보하고, 누군가는 예산확보와 입찰, 계약 총무 업무를, 누군가는 참가기업 모집과 홍보, 누군가는 바이어를 유치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만약 누구 하나가 데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혈액이 돌다가 어느 한 곳에서 콜레스트롤 지방덩어리를 만나 경화증에 멈추는 것 처럼, 일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잘러들은 늘 이 데드라인을 중시한다.
회사에서 가장 완벽한 시스템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보고’다. 보고는 회사의 꽃이다.
혹자는 보고를 싫어할 수도 있겠으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보고의 핵심 기능은 ‘문제 해결’과 ‘책임 분산’이다. 아울러, 이는 ‘데드라인’과도 연관 있다.
예컨대, 누군가 나에게 업무를 지시한다. 업무를 받은 나는 이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다가 그만 상사가 정해준 데드라인까지 처리하지 못했다.
상사는 당연히 내가 그 업무를 해낼 것이라 가정하고 내 결과물을 받아 그다음 일정을 처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사에게 돌아온 답변이 “못했습니다. “ 라면, 상사는 당황하고 그다음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게 된다.
만약 내가 업무를 처리하다가 “이거 안 되겠는데?”라고 생각하곤 곧장 상사에게 보고 했더라면, 상사는 재빨리 이에 대응하고 대안을 찾을 것이다. 내가 사전에 보고함으로써 상사는 이 이슈에 대응할 시간을 확보했고, 비록 나는 한 번 욕먹을지언정 이 업무는 무사히 처리될 것이다.
한편, 사실문제 해결도 해결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책임 분산’ 기능이다.
내가 이 문제를 사전에 보고함과 동시 상사는 나와 같은 배를 타게 된다. “나에게 감히 이렇게 어렵고 그지 같은 일을 떠넘겨? 쉽게 보내줄 수 없다.”라는 마음으로 해도 된다. 사실 상사 입장에선 가라앉는 배에 부하직원이 자신의 멱을 잡고 같이 죽자며 끌어들이는 느낌일 수도 있겠다만, 어쩌겠는가, 이로써 이는 ‘우리 둘’의 문제가 됐다. 책임도 1/2로 줄었다. 내 상사도 그 윗 상사에게 지시를 받았을 텐데, 어떻게든 해내려고 도와주지 않겠는가.
위 예시는 그래도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사의 경우에 해당된다.
하지만, 우리의 상사는 늘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만약 상사가 보고 받기를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스타일이라면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그 사람은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책임지라고 그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 상대에게는 집요하게 보고해야 한다. 우리는 직장에서 이런 사람을 아주 많이 경계해야 한다. 일이 터지면 나몰라라 난 몰랐다며 혼자 발을 쓱 빼곤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사람이다. 절대로 도망가게 두어선 안된다. 심심하면 보고하러 들어가야 한다. 죽더라도 같이 죽자며 멱살을 잡아야 한다. 보고하고 또 보고해야 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불행히도 상사가 너무 무능한 것이다. 이 경우가 제일 어렵지만, 잘만하면 가장 끝내주는 결과를 볼 수도 있다.
상사에게 보고를 하러 들어갔더니, 이상한 피드백을 준다. 누가 봐도 거지 같은 지시고, 과연 저 인간이 이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시한 걸까? 심지어 이걸 처리하는 나 자신이 너무 자괴감 들 것 같다. 사람들이 얼마나 날 이상하게 생각할까, 내가 이러려고 입사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 와신상담하며 참고 보고하고 또 보고해라. 한 가지 업무를 주었다면 그 업무가 끝날 때쯤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그 한 업무를 10개, 20개로 쪼개서 보고하고 또 보고해야 한다.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아주 작은 여러 파도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 당신 업무를 다 끝내고 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를 사전 예고처럼 실시간으로 점진적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이 업무에 대해선 내가 맞다는 걸 몸소 느끼게 해야 한다.
이렇게 몇 달 주고 받고 하다보면 나중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알아서 진행해!”라거나, 책임이라는 단어는 빼고 “당신 알아서 해!”
그럼 그때부터는 신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물론 알아서 진행하라고 해도 보고는 들어가야 한다. 그때부턴 내가 보고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상사가 내 보고를 질겁하게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가.
어차피 내 바로 위 상사든, 이사든 다 같은 월급쟁이다. 생판 남이라고 생각하고 홀딱 벗고 사우나에서 마주치면 그냥 배 불뚝 아저씨일 뿐이다. 상사에게 주늑들 필요 없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각 참석자 머릿속에 “내가 할 일은 이것이야. 그리고 이 업무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하는 거야”라고 입력되면 성공한 회의다.
회의는 가능한 짧아야 한다. 쓸데없이 중언부언하고, 아이스브레이킹을 가장한 상사의 할 말 못할 말 대잔치가 되면 안 된다.
회의를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냥 각자 알아서 처리했으면 되는 시간과 노력과 예산을 넘어서거나, 목적 없이 그냥 왠지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는 회의를 위한 회의가 되면 안 된다. 가능한 컴팩트하게 짧게, 끝나면 각자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 된다. 그래서 종종 회의가 끝날 때쯤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했는지 점검하고 끝낼 필요가 있다.
부하 직원은 바보가 아니다. 직급이 나보다 낮다고 나보다 멍청하거나 사고력이 딸리는 게 아니다. 근데 더러 그렇게 생각하는 상사들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부하 직원은 안다. 상사가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알고 주는지, 모르고 주는 지를.
예컨대, A상사가 부하 직원 B에게 사업 홍보 카드 뉴스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B는 어떤 고객층을 타깃 할지, 어떤 매체로 홍보할지, 내용은 정보전달에 적합한 건조한 개조식 표현으로 해야 할지, 유머러스한 표현과 이미지를 활용할지 등 다양한 의견과 구체적인 지시를 원했으나, 상사는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넘겨버린다.
사실 상사도 카드 뉴스 같은 걸 제작해야 한다는 건 알겠고, 이걸 누군가에게 시키면 된다는 것까지는 알겠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생각지 않았고, 대강 맡기면 알아서 해오겠지 하고 넘어가려 했던 거다.
우리 팀원의 실력을 잘 알고 있고, 지금껏 비슷한 업무를 충분히 잘해왔기에 전적으로 믿고 맡기며 ‘알아서 하겠지’와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일을 떠넘기듯 ’ 알아서 하겠지 ‘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모호하게 어사무사하게 일을 시키곤 나중에 결과물을 받고선 “스읍?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한데? ” 라거나, 대뜸 ”일을 이따구로 해왔냐 “며 뭐가 잘못됐는지 피드백도 안 주면서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부하직원이 준 결과물이 잘 된 결과물인지, 잘 못된 결과물인지를 판단할 기준 조차 없으면서, 일단 내 마음에 안 드니 화부터 내는 것이다.
화를 내는 상사의 의중은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대충 화내고 조지면 알아서 해오겠지”
모호하게 지시해선 안된다. 내 동료 직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내가 본 일잘러는 적어도 이 다섯 가지를 기본 소양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 사실 그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