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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Sep 24. 2023

내가 아는 어느 어른의 모습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정대리님! 오늘도 파이팅!

오늘 정말 날씨가 화창하군요! 행복한 날입니다!

이야~ 우리 김인턴님은 어쩜 이렇게 꼼꼼하실까요?!

안과장님! 고마워요!

아니 분명히 좀 전까지 안되고 있었는데 우리 안대리님이 여기에 딱 오니까 바로 해결이 됐어요, 이야 역시 우리 안대리님! 오늘도 한 수 배웠습니다.

모두 오늘 하루도 의쌰 의쌰 잘 해내봅시다!

오늘 입은 옷이 참 화사하고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정대리님 미안해요 이거 한 번만 해결해 줄래요?! 이야 멋집니다. 대단합니다!

모두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디 안전한 귀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무실에는 신기한 분이 있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늘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고,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함을 표한다.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빠져들고 말았다.

이분의 표현엔 가식이 없다. 진심임을 알고 나니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이분은 엘지전자에서 20년 이상 근무하셨다. 특히 중국 지사에서만 10년 이상 해외 사업을 담당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현지에서 퇴사하고 수년간 개인 사업을 하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동업자에게 회사를 넘기고 국내로 돌아오셨다.

자신이 없어도 회사가 충분히 잘 돌아가는 수준까지 성장한 걸 보시곤, 마음 편히 미련 없이 은퇴하셨다고 한다.

국내로 돌아와 사모님과 몇 개월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하며 지내시다가 같은 엘지 전자 선배들이 정년퇴직을 하고 우리 기관으로 넘어와 수출을 해본 적 없는 중소기업에게 수출에 관해 알려주는 멘토링 업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 이거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분이 믿는 신께서 ‘이제는 여러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가라’ 하시듯 마치 일종의 계시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분 인품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지난 십수 년간 쌓은 수출에 관한 노하우를 공공기관에서 좋은 뜻으로 중소기업에게 지원한다는 업무는 상당히 숭고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렇게 지난해 2월부터 함께 일 하고 있다.

이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게 어른인가? 저분 같은 사람이 어른이지 암암.


저분은 분명 어른이야 근데 어른이 뭐더라.

그렇게 늘 그래왔듯 혼자 상념에 빠지고 선문답을 한다.



어른스럽다. 어른처럼 행동해라. 어른이 돼가지고 행동 거지가 그래도 되냐.

성인이면 어른이라 하던가, 마법처럼 성인이 되는 12월 31일이 지나면 머리 위에 징표처럼 “어른!” 하고 메시지가 뜨면서 변하는 건가.

법적으로 성인이라 어른인가. 나이가 많으면 어른인가. 양력 기준일까 음력 기준인가.


우리가 나이 들고 성장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단어인 것 같다.


'어른이 뭐지?'


사람들마다 나름의 정의가 있겠고 이유가 있겠다만

내가 겪은 분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어른이다.


[고맙습니다.]

누군가 상대방으로부터 고마움을 느낀다면 상대방이 그를 위해 지금 무엇을 배려하고 있는지 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삶의 경험이 충분히 축적됐고, 많은 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자격이 된 사람이다.


얼마 전에 일잘러의 조건에 관해 글을 썼을 때도 같은 말을 썼지만,

아침에 출근하면서 동료 직원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데는 돈 한 푼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를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데 참 좋은 수단이며,

이 행위를 함에 있어서 나에게 마이너스 요인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하지 않겠지만 그런 요인 따위는 없기에 인사를 잘하자라고 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같다. 굳이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마구 난발하듯 하는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쁠까?

지난 1년 동안 받아보니 기분만 좋더라.


이를 입 발린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택시나 버스를 타고 내리면서 또는 식당에서 내가 주문한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는 분들에게 습관적으로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가식이다. 도대체 왜 그게 고마운 거냐, 그건 그냥 저들의 업무 아니냐, 우리는 정당히 돈을 내지 않았느냐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항변하고 싶다.

당신은 실로 중고등학교 때 늘 전교 1등만 했나요, 그렇지 못했다면 왜 못했을까요. 학생이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고 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늘 어딘가 소속되어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있다.

역지사지로 한 번만 생각해 보면,

과연 내가 회사에서 지난 1년간 주어진 모든 일을 잘 해냈을까.

업무가 주어졌을 때,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지 그 일을 잘 해낸다는 결과는 보장되지 않는다. 잘 해낼 수도 못할 수도 있다.

나에게 음식을 내어주는 직원도 똑같다. 매일, 매 순간 주어진 일을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계도 고장 날 때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인간은.

 

저는 당신이 어제까지 이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모릅니다.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바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는 훌륭히 잘해주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적어도 나와 마주하는 이 순간만큼은 맡은 바 업무를 잘 해내주어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곤 너그러이

“고맙습니다~”하고 말해보는 게 어떨까.


[칭찬]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어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정적으로 무뎌지는 느낌이 있다. 매사에 시니컬 해진다고 해야 할까.

희로애락의 진폭이 좁아졌다. 10대 때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음이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폭이 컸던 것 같은데 점차 작아진다.

호르몬 탓인지, 어렸을 때는 모든 경험이 새로워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점차 내 행동에는 한 없이 관대해지고 후한 평가를 주는데 반해, 타인에게는 한 없이 냉소적이고 공명정대한 잣대를 대려고만 한다.

‘그게 뭐 대단해’ ‘그 정돈 다해’ ‘별론데?’ '나도 다 해봤어' '별거 아냐'라는 관념이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하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칭찬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우리는 대게 그렇게 바뀌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본능을 이겨내면서까지 타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서 어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비록  일이 나에게는 쉬운 일이었을지 언정 누군가에게는 산을 옮기는  만큼 어려울 수도 있다는  아는 사람이다.

또한 비록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지라도 이를 공감하고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는 모습들어진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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