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와 갖기
이사를 하거나, 작게는 회사에서 자리를 옮겨야 될 상황이 되면 ‘내 짐이 이렇게 많았나?’ 이런 생각이 들 때 가 있죠. 어디서 가져왔는지, 언제 샀는지, 또 누구한테 받았는지 나도 모르게 하나둘씩 보이는 짐들은 스스로 찾아간 것 마냥 책상 서랍 속, 책장 한편, 가방 속 또는 집안 구석구석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버리기’ 보다 ‘갖기’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무언가를 갖는다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죠. 내 것이 생기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그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라면 금상첨화겠죠. 그런데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고, 난 두 개가 있는데 옆 사람이 세 개 있으면 왠지 상대적으로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죠. 가지면 행복해야 하는데 왜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더 애를 써야 하고, 더 경쟁해야 하고, 더 욕심만 커져가는 걸까요?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 주변에 사람들을 만나 소주라도 한 잔 할 때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중에 주변 사람들 사는 얘기는 늘 빠질 수 없는 기본 안주죠. 누구는 아파트 값이 얼마 뛰었다, 누군 연봉이 얼마다, 주식이 올랐네 떨어졌네, 누구는 차를 바꿨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이런 관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돈도 잘 벌고 번듯한 집도 있는데 매일을 지옥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가진 것은 안 보고, 남이 가진 것만 보고 남들의 기준에 자신의 기준을 맞추는 사람이죠. 나이가 3~40대쯤 되면 차는 중형 세단에 응당 3~40평대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1년에 한두 번씩은 해외여행을 나가야 하며, 아이들은 인 서울 대학을 목표로 밤 12시까지 학원교육을 시켜야 하는, 어쩌면 이 시대 대부분의 중년층들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 데라는 생각으로, 그래서 그게 잘 사는 정형화된 삶의 모습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그리고 그 믿음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더 많이 ‘갖기’ 만을 고집하는 순간부터 매일매일이 지옥으로 변할 수 있는 확률은 커집니다.
소위 인생에는 답이 없다고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답정너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가진 걸 다 털고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을 다닌 다던지, 도시를 떠나 유유낙낙 시골의 삶을 선택하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삶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스스로 고찰한 삶의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을 따르고 ‘버리기’는 없이 ‘갖기’ 만을 고집하며 그것이 전부라는 고정관념이 생기는 한, 삶은 버리기를 작심한 단풍 든 나무보다 아름답지 못할 거라는 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