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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석 Mar 05. 2019

그냥, 그린다.

고삼의 생뚱맞은 그림 그리기

    최근 그림을 시작했고, 고삼이다.

    

    미술 입시를 준비하지 않는 고삼이, 그림을 그린다.    

    나는 아마도 첫 문장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기 충분한 명분을 만들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림이나 그리고 있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고삼이 그리는 그림은 죄다 낙서로 보이는 게 정상인 분위기에, 문제집을 펴는 대신 연필을 깎는 모습은 고삼 교실에서는 터부나 다름없다. 신성한 교실에서 그림 '따위'나 그리고 있다.


    그림을 시작한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다. TED를 둘러보다 그림 그리는 방법, 누구나 그릴 수 있다는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고,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 채널을 구독했고, 가장 중요하게도, 그리기 시작했다.

    https://www.ted.com/talks/graham_shaw_why_people_believe_they_can_t_draw

    

    '사람들이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나를 그리게 한 첫 메시지다. 나는 왜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할까. 어릴 때는 잘은 못 그리더라도 그렸다. 습관적으로 낙서를 하듯이 그림을 그렸고, 뭉툭한 색연필을 부러뜨려가며 조악한 그림이라도 그렸다. 다시 꺼내어 보는 나의 유치원 시절 그림들은 이제 못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 꺼내어 보는 지금도 역시 못 그린 그림이 아니다. 어릴 때 그린 그림들은 그렇게 누구에게도, 언제 보아도 못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언제부터 그랬을까. 그림뿐만이 아니다. 수영, 모르는 사람에게 길 묻기,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기, 이외에 수없이 많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젠가부터 내 곁을 떠났다. '잘할 수 없어서'는, 점점 '할 수 없어서'가 되어버렸다.


    우연히 본 TED 영상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명강의도, 그림 그리는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는 못난 그림 실력이 아니라, 그릴 수 없다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기는 충분했다. 언제부터 어떤 일을 할 때 잘할 수 있는지부터 따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느새 잘할 수 있는 일, 완벽히 해낼 수 있는 일들만 골라잡기 시작했다. 사실 잘하고 못하고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는데, 하기로 마음먹은 다음부터 고민할 문제였는데 말이다. 이 TED 강의가 준 한 가지 중요한 선물은 내가 어떻게 그리든 사실 아주 글러먹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그리기만 하면 대화가가 그린 멋진 작품은 아니더라도, 봐줄 만한 무언가가 나온다.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처음 그린 그림

    그림을 그리기로 하고 처음 그림을 그렸는데, 결과가 썩 괜찮았다. 적어도 내 눈에 못 봐줄 만한, 구겨서 집어던지고 싶은 실패작은 아니었다. 평소 좋아해서 집에 잔뜩 쌓아놓던 요구르트 팩을 그렸는데 선 처리도 엉망이고 그림자 표현은 어설픈 데다 명암도 이상하다. 그림을 배워 본적도, 자주 그려온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그런데 어쩐지 내 눈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내 첫 번째 그림에 기대했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집어던지지 않았으니 기대 이상이라는 증거다.) 첫 그림을 완성했을 때 느꼈던 뿌듯함이나, 나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그릴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림을 하나씩 그려가며 느끼는 건, 비록 잘 그리지 못해도 그릴 만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관찰해 내가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내 그림에는 내가 있다. 선은 삐뚤빼뚤하고 보기에 아름답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그린 그림에는 자동으로 콩깍지가 씐다. 아마도 그림 실력에 전혀 기대가 없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순간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지만, 적어도 종이와 연필 한 자루는 필요하다. 그리고 연필은 깎아야 한다. 그림을 그리기로 하고 나서 내가 연필을 얼마나 못 깎는지 실감했다. 몇 년 만에 연필을 깎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심은 서투른 칼질에 반으로 쪼개져서 전체를 들어내야 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는 말이 맞다. 그리고 연필 깎기의 경우에는 필요한 시간이 짧았다. 몇 번 연습한 후에는 스스로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촉이 만들어졌다. 물론 매번 깎는 일이 편하지는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작은 보람을 얻기에는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자연스럽게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는 마음으로 그리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기 위한 일종의 준비동작이다.

    

    관찰하는 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대충 보고 나머지는 상상하며 그리면 대상을 닮지 않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요구르트 팩의 색은 어떤지, 접힌 부분은 어떻게 생겼는지, 비율은 어떤지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한 대상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정이 가는 법이다. 평소에는 무심코 사용하거나 가볍게 지나쳤던 작은 물건들이, 그림의 대상이 되면 내 시야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사용하고 있는 지갑 드로잉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에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눈에 보이는 아무 물건이나 집고, 그리기 시작하면 된다. 며칠 전에는 의자에 앉았는데 뒷주머니에 지갑이 느껴져서 그대로 책상에 올려놓고 그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림 솜씨는 늘지 않았지만, 내 지갑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재질은 종이, 박음질은 홈질, 뒷면에 주름이 많다, 등등. 그리는 동안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내 물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보기에 아름답지 않아도, 그리는 과정에서 새로 생각하고 알아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지갑 드로잉도 구도가 완전히 어그러졌지만, 그리는 과정에서 만족스러웠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미술 학원에 다니거나 인터넷 강좌를 보며 연습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그림의 목적은 더 잘 그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는 과정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알지 못했던 작은 부분들을 하나씩 알아가기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잘 그린 그림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지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주는 역할로는 충분하다. 또,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리는 상황이 기억에 강하게 남기 때문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꺼내보면 그림을 그렸던 상황을 뚜렷하게 기억해낼 수도 있다. 아마도 초등학생 시절에 그림일기 숙제가 있었던 이유가 이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림은 대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와, 적어도 남들과 다른 나의 사소한 철학을 만드는 기회를 준다. 연필을 깎을 때는 어떤 순서로, 어떤 방향으로 깎는 방법이 내 마음에 드는지, 그림을 그릴 때는 사물의 어떤 면부터 관찰하는지 등 나만의 것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무도 시키지 않고, 아무도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에게는 낯선 작업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단순히 그릴 수 있다는 용기만 얻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단순히 잘할 수 없다고 포기해버렸을까? 중요한 것은 연필을 깎고 무엇이라도 그리기 시작하는 일이었는데, 잘 그릴 수 있을지 가늠하고 결국 포기해버리던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림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이라도 같을 것이다. 잘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학교에 가지 않듯이,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 않던 일을 시도해본 한 고삼에게 나쁘지 않은 결과가 있었다는 것을, 아마도 대부분의 복잡한 일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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