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 맛
우리 사이의 기억들은 하나같이 짠 맛을 냈다
여느 때 묵은 젓갈의 맛처럼
한 젓가락에는 바다를 집어서
다 흘려보내고는
소금만, 소금만 남듯이
상처는 더 따갑게
기쁨은 번지게 하듯이
때로는 밥 없이 먹고 싶은 봉지김처럼
새롭게 익숙던 타향의 기억을
하나씩 뜯어 입에 털어넣고
그 짠 맛에 다른 짠 맛을 찾고
조금은 남겨
다시 좁다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부단히도 그립게 걸었다
4.29
2019. 5.2 : 고삼 첫 내신 시험이 끝났다. 요즘 들어 글이 뱉어지지 않았다.
3학년 첫 중간고사가 끝났고, 더 많은 아이들이 정시를 택했고, 더 많은 마지막을 보냈다. 어제 나의 마지막 어린이날을, 저번 주에 고등학교 마지막 체육대회를 마쳤다. 5월에는 더 많은 것들을 마지막으로 보내야 한다. 마지막 수행평가들, 마지막 대회, 마지막 PPT 준비 자료들. 그만큼 더 많은 첫번째들이 있겠지.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하고부터는 시나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이 나이에 가볍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보상이었나.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걸맞는 보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술술 써지던 시도 모처럼 써지지 않았다. 수상 직후부터 내 글을 향한 최저선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게 생겼나보다. 그림을 뜬금없이 시작한 것도 나의 기준을 다시 아래로 끌어내리기 위해서였다. 다시 작은 것들에 만족하기 위해, 불완전한 나의 솜씨를 인정하기 위해.
내 책을 출판해 준다니. 내 책을 서점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의미다. 교보문고 플래티넘 등급을 2년째 유지하고 있는 내게 내 책이 꽂힌 서가 앞에 설 수 있는 일은, 진정한 짠 맛이다. 신기하게도 올해 목표로 내 책 출판하기를 일기에 적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렇다. 쓰니까 이루어지는 마법. 나는 이런 일들이 유명한 사람들의 자서전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똑같은 바램을 썼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절대 아닐)운 좋은 몇몇에게 실제로 일어나서, 그 몇몇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뻔한 레파토리인줄 알았다. 왠걸. 이렇게 떡하니 내게 일어났는데. 어쩌면 더 겸허한 자세로 글을 쓰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더 솔직하고, 더 내가 담겨 있고, 더 나다운 글을 뱉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짠 맛을 내 안에 더 많이 품기를.
김 혼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