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유학 생존기
돈을 가장 현명하게 쓰고 싶다면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외로운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옷을 사고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사람들도, 매일 자기 몸과 피부에 닿을 것들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가급적 좋은 것으로 쓰라는 이야기에, 나는 사실 별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가성비를 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감성비’에 더 끌리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게 물건의 가격은 만족감과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만 오천 원짜리 가디건을 사서 2년 동안 닳아빠질 정도로 입거나 전혀 필요 없는 조립식 카메라를 거금을 주고 사서 필름 카메라 느낌이 난다며 좋아하기도 한다. 가디건은 최근 청바지와 같이 세탁기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이보리에서 물 빠진 연청색이 되었기 때문에 회생 불가 판정을 내렸지만, 그 값 이상의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마치 은퇴하게 해달라고 비는 황희를 꿋꿋이 부려먹는 세종대왕처럼, 나는 여러 벌의 옷과 신발을 닳도록 입고 신다가 보내버렸다. 그러니까 제품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가격에 비해 얼마만큼의 성능을 주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 갭이어를 하면서 같은 종류의 물건에 대대적인 소비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내 방 인테리어를 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방치된 나의 불쌍한 방은 쓰지도 않는 스탠드형 화이트보드와 무식하게 큰 4인용 테이블 두 개, 그리고 애매하게 배치된 그 테이블들이 진입을 차단해버린 책장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건축이나 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첫눈에 창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주말마다 방에 도착해서 잠을 진탕 퍼질러 자다가 필요 없는 짐을 던져놓고 가기를 3년 정도 반복하자 내 방은 무언가를 하는 공간이라기보다 무언가를 놓는 공간이 되어갔고, 그 모든 것의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으면 차라리 드러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곳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현실 의식(물론 지금은 1년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그때는 코로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없었다.)이 들기 시작하자 이 모든 것을 전부 치워버리고 사람이 적어도 발 디디고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해서 리모델링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테이블 두 개와 거기 딸린 의자 네 개를 들어냈다. 왜 내 방에 의자 넷이 딸린 테이블이 있는 건지 그때까지는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때 깨달았다. 산 중턱에 있는 내 방에 네 명 이상이 찾아오고, 저 못생긴 테이블에 앉아서 무언가를 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그다음은 화이트보드였다. 해체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고, 지금은 창고에 고이 접혀서 귀양살이 중이다. 그 외에도 책상을 창문 쪽으로 돌린다거나, 사이드 테이블을 서재에서 빼돌려온다거나 하는 다양한 실험이 있었다. 그렇게 내 방은 반쯤 빈, 명상실 같은 곳이 되었다.
그 안에 새로 들여놓을 가구를 정하는 일, 여기서 아까 공들여 설명했던 소비관이 빛을 발한다. 리모델링을 위해 구입한 목록은 대충 이렇다: 스탠드형 전등, 빈백 소파, 책상용 목재 스탠드, 러그, 원형 탁자, 3단 목제 선반, 그리고 낮은 목제 스툴. 리스트를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제품 대부분이 목재였고,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예를 들면 스탠드형 전등은 4만 원쯤 했던 것 같고, 목제 스툴은 18만 원 정도였다. 러그는 무려 2만 8천 원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스탠드가 스툴보다 비싸거나 러그가 저것보다는 비싸야 하겠지만, 그런 거 없었다. 러그는 쿠팡에서 최저가 검색을 통해 구매했고, 빈백 소파는 리모델링 전문 홈페이지에서 네 시간 동안 검색해서 찾았다.
알맞은 스탠드와 빈백 소파, 러그 세 가지가 함께 할 때 주는 감성은, 가격에 비하면 하늘에 닿을 지경이었다. 특히 스탠드 전구가 발산하는 낮은 명도의 빛은 저녁 감성을 끌어올려 주기에 완벽하다. 지금도 나의 저녁 생산성의 대부분은 45W 전구 두 개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감성으로 활력을 충전하는 사람이고, 좋아하는 유튜브 뮤직 플레이스트를 틀어놓고 빈백 소파에 앉아 이불을 덮고 노트북을 펴놓으면, 과제가 얼마나 밀려있던지 기분만은 좋을 수가 있다.
방 리모델링은 왜 사람들이 좋은 것에 투자하라고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계기였다. 그전까지는 방이라면 책상이 있고 책장이 있는,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세심하게 설계한, 내 취향으로 채워진 감성 있는 공간이란 건 단순히 보기 좋은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제공해준다. 내 방은 그런 의미에서 개인 스튜디오나 사무실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내 손에 닿는 물건들이 나의 취향과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기도, 이 공간에 더 머무르고 싶은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내 방은 거의 같은 모습이지만, 내가 선택한 몇 개의 소품들이 추가되었고,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좋은 느낌이다. 아마도 1년 전 인테리어를 단행하지 않았더라면 이 공간이 지루하고 뻔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아마도 점점 길어지고 있는 이 고립된 생활을 더 힘들게 지나가야 했을 것이다. 만약 내 방이 너무 단조롭거나 뻔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작은 규모로 인테리어를 직접 해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조명이 방의 분위기에 가져오는 변화는 너무 커서, 형광등 대신 스탠드 전구를 쓰는 것만으로 아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작은 공간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