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못살게 된 이유와 가톨릭 그리고 마사지 산업(매춘)
2019년 9월 휴가차 세부(Cebu)에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나는 보통 여행을 가면;
1. 무조건 자유여행이다 - 나는 느낌 좋은 곳이면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있거나 흥미로운 지역주민을 만나면 오래 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깃발부대는 적성에 맞지 않다. 영어를 할 줄 알는 게 이럴 때 참 유용하다. 검은 피부와 말투 작은 키 등으로 어딜 가도 현지인삘도 나고 아무도 나를 관광객으로 잘 보지 않는다. 한국인조차도 나를 중국인 취급했다.
2. 방문지에 대해 역사공부나 자료를 찾아본다 - 필리핀에 대해서 몇 가지 알게 된 사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보려 한다.
필리핀 : 스페인의 점령 당시 스페인의 세자 핀리페2세의 이름을 따 만든 국가. 16세기부터 스페인 - 미국 - 일본 - 미국으로 꾸준히 외세의 관섭을 받아온 나라. 지금은 미국의 영향으로 영어를 많이 쓰지만 지명이나 사람들 이름에는 많은 스페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7천 개가 넘는 섬과 1억이 넘는 인구, 천주교가 주류이지만 개신교와 무슬림이 뒤석인 나라다. 하여 각 지역마다 문화나 분위기가 다름으로 나는 내가 방문한 세부 위주로만 느낀 점들을 언급하겠다. 참고로 수도는 마닐라이다.
한국어로 세부라 발음하지만 현지인들은 '씨부'에 가깝게 발음한다. 세부 시티에는 대형 쇼핑몰과 번화가가 있지만 세부로 놀러 간다고 하면 대부분 막탄섬에 머문다. 바닷가와 가깝고 비싼 리조트들이 동쪽 해안선을 따라 빽빽이 들어서 있다.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다양한 해양 스포츠도 이 곳에서 즐긴다. 국제공항도 이 섬이 있다.
사람들이 인스타나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은 다음과 같은 사진일 것이다.
이제부턴 필리핀의 진짜 모습을 보자.
라푸라푸시는 침략자 스페인에게 맞서 싸운 전사/부족장의 이름이다. 그 막탄 전투의 결과로 스페인의 필리핀 정복을 40년 미루고 포르투갈 출신 스페인 탐험가 마젤린을 죽이지만 결국은 스페인 군대에게 학살당하고 정복되고 만다.
정말 웃긴 건, 그의 동상 뒤엔 마젤란 기념비가 떡~ 하니 있는데.... 자신들의 선조를 죽이고 약탈한 스페인이지만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하여 성인으로 기념하기 위해 침략자와 저항자를 같은 공간에서 기념하고 있다. 역사란 해석하는 놈에 따라 평가되는 참 얄궂은 놈이다.
필리핀은 지푸니(승합차 사이즈 대중교통), 오토바이, 트라이시클 등을 이용하는데, 가격은 매우 싸지만 매연 때문에 나는 한 번 타고 그냥 카카오택시 같은 Grab을 늘 이용했다. 우버도 잠깐 있었지만 철수했다고 하네. 섬 반 바퀴를 도는데 짧은 거리이지만 좁은 도로에 많은 교통량으로 30-40분 정도 걸렸는데, 그랩 운전수이면 그래도 잘 사는 축이었다. 좋은 차일수록 영어도 잘했다. 필리핀인이라고 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교육 수준 = 영어 수준= 소득 수준은 어느 정도 비례하기 때문에 비싼 SUV 자차 운전사들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관광객들은 공항에서 내리면 바로 호텔이나 리조트로 가기 때문에 섬에 중앙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라푸라푸시(막탄섬)는 공장지대이다. 핸드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대규모 공장이 있었다.
(아... 늘~ 짧게 쓰고 싶은데 막상 키보드를 누르다 보면 뭔가 계속 나온다..... 그래도 흐름상 그냥 가자.)
그 공장지대엔 5천 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일한다고 하는데 퇴근시간이 되면 교통지옥이 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랩 택시 기사가 해안도로는 너무 막힌다고 공장지대 중앙을 가로질러 가면서 섬 중앙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되었다. 공장 노등자들은 평균 하루 일당 400페소를 받는다고 한다. 한국돈으로 만원 조금 안된다. 호주 달러로 11불.... 그들이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이 호주에선 최저시급도 안된다. (호주에선 직종에 따라 최저시급이 다른데, 만약 식당에 계약직으로 웨어터를 한다면 시급 20불 정도 된다.)
로스 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에 따르면 필리핀은 3단계 국가에 속한다. (세상을 단순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누지 마시라)
1단계 : 하루 2달러 이하 (세계 인구의 10억 명)
2단계 : 2~8달러 (세계 인구의 30억)
3단계 : 8~32달러 (세계 인구의 20억)
4단계 : 32달러 이상 (세계 인구의 10억)
당연히 한국이나 호주는 4단계(우리 삶을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패스)이고, 3단계 국가는 집안에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고 침대와 냉장고도 있다. 오토바이나 저렴한 소형 중고차도 소유하고 있다. 2G 폰도 많이 쓰지만 대부분 젊은이들은 3G폰이나 아이폰을 가지고 있다. 매일 많은 노동에 시간을 보내고 사고나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든 2단계로 추락할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간다.
필리핀은 일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인구가 너무 많다 보니 일당이 적은 건 인지상정이고, 가톨릭 국가라서 아이를 많이 가지기 때문에 악순환에 빠졌다고 짓거리는 자들에게 다른 시아를 열어 주도록 하겠다.
세부에 있는 한국인들은 2가지 편견을 가지고 있다. 1. 핀리핀인은 게으르다. 2. 천주교 때문에 가난하지만 계속 아이들을 많이 가져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 필리핀인이 게을러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성(일본과 미국인이 개화기 당시 조선인은 게으르고 미개하며 서로 이간질하는 종족이라 했듯)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하루 일당이 400페소(만원)다. 당신 같으면 하루 만원 받고 충성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는가? 월급 인상이 보장되면 그렇겠지만, 여기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자르고 다른 사람 고용하면 된다. 물가가 싸지도 않다. 길거리 음식은 싸긴 하진만 맥도널드나 졸라비 같은 음식점은 보통 노동자들이 가기엔 부담이 되고, 아웃렛에서 나이키 운동화 사러 갔다가 호주 아웃렛보다 비싼 값에 그냥 나왔다! 해양스포츠나 숙박업소도 결코 인건비 대비 싸지 않다.
스쿠버다이빙 한인업체에서 내가 같이 다이빙하는 사람들과 장비 옮기고 도와주려고 하자 한국인 다이버가 건들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리고 같은 팀이 아닌 노예 부리듯 필리핀 직원을 대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그 한국인과는 별로 말도 안 하고 필리핀 친구들과 계속 대화했다. 그 다이버는 필리핀 애들이 게을러서 계속 일을 시키고 압박해야 한다고 나에게 불평했지만, 글쎄... 호주인들은 이런 말을 즐겨한다.
You get what you pay for
대우(지불)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일당 만원 주고 그 무더운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2. 인과관계가 잘못되었다. 가톨릭 국가라 못 사는 게 아니라 못살고 있는데 그들이 믿는 종교가 가톨릭인 것이다. 스페인은 구교(가톨릭)를 밀었고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신교(개신교)를 지지했으며 영국은 그 중간쯤 되는 영국 성공회를 지향했다. 스페인이 망하면서 그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나 필리핀 등의 나라들의 경제를 말아먹은 건 사실이지만, 2차 대전 후 미국과 영국의 손길이 닫지 않은 곳이 없음을 기억하자. (대항해시대에 대해선 내 브런치에 "역사를 재미있게 말하는 법"을 읽어보시길)
책 팩트풀니스에 의하면 아이를 많이 가지는 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라 교육 수준과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데이터로 명백히 보여준다. "천주교는 피임과 낙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난해도 계속 아이가 많다?" 그럼 한국 50-60년대(베이비 붐머 세대 - 우리 부모님도 양가 형제가 6이다)는 뭐여? 그리고 그랩(택시) 운전사(중상위층)들은 아이가 1-2이었다. 그들도 가톨릭이다.
민족성과 종교로 그들을 당신의 편견에 옭아매지 말자.
그렇다면 왜 필리핀은 20세기 중반에 일본 다음으로 잘 나가다 지금은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을까?
1. 정부의 부정부패?
2. 게으른 국민성?
3. 일 년 내내 덥고 습한 날씨?
1. 정부의 부정부패는 가장 쉬운 핑계 꺼리다. 대한민국이 전두환/노태우 시절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청렴하다고 볼 수 있나? 정부의 부패는 결국 당신(우리/본인)때문이다. 그들이 당선될 때 투표하지 않았다고 본디오 빌라도가 손 씻듯 당신의 잘못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들의 당선에 침묵한 방관죄! 당신이 뽑았다면 부패한 정치인을 뽑은 당신의 무지죄! 정치인들 다 똑같다고 핑계 대지 마라. 분명 선한 의도를 가진 좋은 분들 있다. 언론에 휘둘리지 않고 그분들을 찾아내고 비판적 시선으로 진실을 알고 당선시킬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2. 게으름은 위에서 다루었다. 인건비의 문제다. 노태우가 정말 잘한 게 최저시급 엄청 상승시켰다. 그 시대 포항재철 협력업체에서 월30만원 받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월급이 많이 올랐다고 오토바이를 팔고 승용차를 샀다. 아버지는 취직과 퇴직 때 20배가 넘는 월급 인상을 경험하셨다. 시장이 공급과잉으로 인건비를 절대 안 올릴 땐, 정부가 칼을 들이대야 한다. (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필리핀이 나이키 운동화는 15만 원씩 하면서 노동자 일당이 만원인 시장을 방관한다면 그 무더운 날씨에 누가 땀 흘리며 개고생 하겠는가.
3. 싱가포르에서 날씨 문제의 교훈을 얻으면 좋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 필리핀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암과 같은 존재 "양극화"에 있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약탈에서 벗어난 필리핀. 결국은 가진 자들이 미국과 결탁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데, 한국은 해방 후 이승만 정권 때 6.25 전쟁 중에 토지개혁을 성공한다. 그 사람을 찬양하는 부류들은 국민들의 안위와 평등한 사회를 위해 개혁을 단행했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렇게 본다.
중국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장제스의 국민당이 붙을 때, 미국을 업은 장제스의 국민당 군사력이 월등했지만 결국 공산당이 이기고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망가게 되는데. 이유는 마오쩌둥의 군대가 농민의 민심을 잡았기 때문이다. 쿠바에서 체 게바라 혁명의 성공도 지역 주민의 절대적 지지에 있었다. 미국은 이 사실을 통해 전쟁을 이기기 위해 조선의 농민들에게 환심을 사야만 했고, 밍기적 거리는 이승만을 압박해 농지 개혁을 단행시킨다. 이승만은 전쟁 후 반민족청산위원회(친인세력 때려잡기)를 해체시켰다.
전쟁 후 농민들은 자신의 땅에 농사를 짓고 영여 생산물로 돈을 모아 자식을 교육시키고, 그 자식들은 공업에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노동자를 위해 피 흘리고 뜨거운 불에 분신자살로, 민주화를 위해 체류탄에 머리 박살 나며 목숨 바친 분들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은 상호 영향을 미쳐서 대한민국은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대기업 위주의 양극화에 속히 손쓰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필리핀에 추월당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필리핀은 토지 개혁 실패 등 극심한 양극화로 그 썩은 동화 줄을 아직 끊지 못하고 있으며 6-10명 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춘사업에 내몰리고 있다. jtv, ktv 등으로 알려진 매춘용 클럽은 바바에(여자라는 뜻)라 불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춘은 노동대비 임금이 높기 때문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고 어떠한 사연으로도 현대의 윤리나 종교관으론 합리화가 안 되는 직업이지만, 그들의 상황이 이해가 되고 연민이 느껴졌다.
나도 처음엔 여자 친구와 건전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 종류에 따라 90분 기준으로 500페소(만원)에서 2000페소(6만 원)로 다양한데, 대화를 좋아하는 나는 말을 걸어 봤지만 마사지사들은 어설픈 한국어 ("괜찮아요? 아파요?")를 하고 영어는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후에 영어 잘하는 마사지사를 만나 이런저런 인생이야를 나눴는데, 부모님은 직업이 없고 장남 오빠도 놈팡이에 자기 밑으로 5명 동생이 있어서 집안의 장녀로서 가족을 위해 20살 초반의 자유를 다 버리고 매일 일하고 있다는 그녀. 내가 재미있었는지 다음 손님이 없어서 90분 마사지 끝나고 1시간 또 나랑 수다 떨고 놀았는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손님이 와서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덤
세부는 한중일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어디를 가도 한국어 안내가 있었다. 문제는 공공시설 조차도 영어를 의역하지 않고 번역기 그대로 직역한 문구들이 많이 보였는데 웃음이 나왔다.
언어 공부에 있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제대로 된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영어공부는 한국이든 외국이든 상관없다. 당신이 얼마나 꾸준히 제대로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다. 하지만 외국에서 현지인을 만났을 때, 영어가 아닌 미국어, 영국어, 호주어, 필리핀어를 잘 구사하려면 그 나라에 살고 그 나라의 문화와 분위기도 배워야 한다. 현지 어학연수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본다. 비용 문제와 외로움이 큰 단점이다.
한국에서 기초를 다지고, 필리핀에서 1:1 집중 교육을 받은 뒤, 호주나 캐나다에 가서 실생활 영어를 배운다면 말하기/듣기 능력은 확실히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미국이나 영국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혹시나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호주나 캐나다가 그래도 영주권을 취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숙식 제공하는 스파르타식 영어 기숙학교가 있는데, 가성비가 괜찮다고 본다.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
필리핀 여행을 가면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들을 색안경 끼고 대하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매너 있게 대해 보라.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고, 생각지도 못한 정보나 호의가 돌아올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당신은 타인을 존중한 훈훈한 당신에게 감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