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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Oct 17. 2015

여행은 확실이 병이다

떠나야만 사는 사람

 2013.12.27

  편도 비행기 티켓과 단돈 백여만원을 들고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로 향했다. 일주일 이상의 해외여행은 거의 처음이었고, 혼자 국외로 나와본 것도 처음이었다. 준비하면서는 말도 못하게 설렜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모든 것이 두렵기만해 몇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특히, 출국을 앞두고 내가 초기 정착지로 삼은 브리즈번에서 한인 피살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살게된 첫 집이 바로 그 피살지역 50m 근방이라는 사실을 부모님은 지금까지도 모르신다.) 

  광저우 공항을 경유해서 총 13시간이나 비행기안에 있으며 내가 너무 무모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스쳐지나갔다. 돈을 아끼고자 어학원도 거치지 않고 혼자 준비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브리즈번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막막했다. 남들은 천천히 여행부터 하고 어학원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낼 타이밍에, 나는 시티 중심가에 있는 8인 1실 싸구려 백패커에 머물며 서툰 영어로 쓴 레쥬메를 돌리러 다녔다. 악덕 한인 사장 밑에서 며칠씩 일만 해주고 돈을 못받은 적도 있으며, 일자리를 알아보러 차를 타고 한시간 거리에갔다가 돌아올때에는 버스가 없어서 한참을 무작정 걸은적도 있다. 또, 밤마다 독일인 7명 룸메가 독어로 된 영화를 시끄럽게 틀어놓고 보는 탓에 잠을 며칠씩 못이루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리는 연습을 해야했다. 호주에 가자마자 아끼던 맥북을 팔았다. 아이패드도 팔았다. 대신에 보급기 DSLR 한 대와, 브리즈번 중심가에 있는 어느 회사 사무실에서 쓰던 50불짜리 일체형 컴퓨터를 샀다. 긴 키보드를 가방에 대충 찔러놓고 무거운 컴퓨터를 들고 집에 가며 왠지 모를 서러운 맘이 들었다. 

  카메라를 산 이유는,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일종의 이유거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출사’라는 이름으로 다니면 왠지 덜 외롭고, 덜 처량해 보일 것 같았다. 사실, 한국에서 이미 오래된 DSLR 한 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해외까지 가면서 이렇게 크고 무거운걸 들고다닐까 하는 생각에 팔아치우고 컴팩트 디카를 사가지고 갔었다. 결국 그 카메라는 같이 한인교회 다니던 형님께 그냥 드려버렸다. 

  여튼 그렇게 산 카메라 한 대를 메고, 배낭에 초코바와 물 한통만 지니고 주말마다 여행을 했다. 구글 맵을 켜고 임으로 목적지를 정한다음 계획도 없이 그렇게 무작정 떠나곤 했다. 때로는 길이 끊겨 담을 넘어야 했고, 때로는 히치하이킹에 실패해서 왕복 네시간을 걸은적도 있다. 그렇게 다니며 나만 아는 공간이나 장소가 생기기도 했고, 그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영화관에 가도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길위에서 만나는 그림 같은 경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게 참 아쉬웠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들을 전달한 적도 있다. 

  한국에 돌아온지 1년여가 지났다. 여전히 나는 틈만 나면 여행을 계획하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기를 좋아한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여행을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꾸만 그때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얼까. 


  '정들면 고향'  

 (すめばみやこ; 스메바 미야코)


  얼마전 일본인 친구한테 배운,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브리즈번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의 주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주소는 택배를 받을때마다 가끔식 헷갈려 하면서도 말이다. 정들어 고향이 되어버린 그곳. 파란하늘에 뭉게 뭉게 구름, 땀으로 셔츠가 다 젖어도 기분만 좋았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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