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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코비 JACOBY Apr 17. 2020

my grand mother

할머니의 전화


94년 국민학교 하굣길

늘 한 손엔 떡꼬치

다른 한 손엔 할머니 손


할머니 침대 머리맡의 소라과자 센베

입천장 까지도록 먹던 오란다

주기도문 외우면 용돈 타던 일요일

할머니 방에선 늘 약 냄새


다리 건너 시장의 계란집

계란 한 판 들고 오면서

할머니와 몇 번이나 멈춰 쉬었던 뚝방길

의정부 국도극장

할머니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둘이 봤던 이집트 왕자


회룡중학교 축제

할머니의 캠코더에 남은

내 첫 자작곡 무대

할머니의 떡국

그 안엔 늘 소고기

신곡동 동아아파트

동호수는 기억 못 해도

848 5804


수능 전날 밤

손에 쥐어준 할머니의 편지

한문이 가득했던 기도문

이등병 첫 면회

할머니가 지팡이 없이

나에게 뛰어오신날


휴가 때마다

할머니랑 둘이갔던

동호 갈비

고기는 내 앞에 몰아주고

할머니는 공깃밥에 게장만


할머니 침대 머리맡

A4로 뽑아 붙인 내 사진

TV에선 절대 안 나오는 내 노래

할머니는 TV에서 내 노래 들은 것 같다고

휴가 때마다 녹음했던 할머니와의 대화들이

내 자장가였던 병장 시절


하지만

산산조각 나버린 가족들과

마주치는 게 껄끄러워

할머니의 전화를 피했던 몇 년.

그렇게 내가 클수록 할머니는 점점 작아졌고

내 안에서도 점점 작아만 졌다.


더 이상 할머니의 전화가 오지 않았고

몇 년 후 다시 만난 나의 할머니는 병원에서

초점이 없이 천장만 바라보셨다.

엄마도 이모도 삼촌도 못 알아보셨다.

그런데 나는 알아보셨다.


입술이 바짝 마른

앙상한 나의 할머니

나는 나쁜 놈

정말 나쁜 놈


목사님이 할머니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셨고

할머니는 더 작아져서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주 작은 생명체로 세상에 태어나

할머니의 품에 안긴 그때처럼.





다시 한번 할머니의 전화를 받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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