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팀의 줄라이, 1년 동안의 이야기
작년 3월 1일, 민주주의 활동가 그룹 Parti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일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어요. 소셜벤처도 아니고, NGO도 아니고, 활동가 그룹이라니. 모호하지만, 하고싶은 것이 분명했던 팀에 합류해 1년을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만 1년이 된 오늘, 그 시간 중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골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2016년 10월 마지막 날,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입사하리라
한창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던 시기, 이 포스팅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왔습니다. 그동안 정치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지하는 정당이 없었고, 기존과 다른 무브먼트는 불가능한 것일까를 고민하던 때였어요. "정치가 중요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정치엔 답이 없다"라고 결론을 내버리며 정치혐오를 내뿜는 시기였죠. 그런데 프로젝트 정당이라니! 뭔가 가볍고, 흥미로운 것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저도 그룹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만들어 진 것이 '우주당'이에요. 광장에서 주말을 보내고 현실로 돌아오면 뭔가 하고 싶은데 할 것이 없고 나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아 외로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주중에도 북적북적하는 우주당 그룹에서 생각도 함께 나누고, 같이 작은 프로젝트들도 하면서 덜 외로워졌습니다.
우주당과 함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즈음, 빠띠에서 우주당의 집사이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일하게 되었어요. 빠띠는 우주당을 인큐베이팅하고 있었거든요. 멤버들이 모두 우주당의 당원이기도 했고요.
이전에 없던 실험을 해보자는 의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직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기였는데 민주적 조직을 만들기 위해 멤버들이 함께 얘기하고, 룰을 정해나가는 문화도 마음에 들었구요. '민주주의 활동가 그룹'이라는 모호한 곳에서, 이전에 한번도 일해보지 않은 형태(재택근무)로 빠띠의 July가 되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3월, <월간 우주당> 창간
빠띠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프로젝트는 '월간 우주당'이었습니다. 어떤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종종 '뱉고 나면 평생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시작도 전에 포기하곤 합니다. 무브먼트를이어가는데 있어 해결하고자 하는 치열함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자각, 그리고 뭔가 시작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매거진형 직접정치참여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은 '월간 우주당'은 한달에 하나의 이슈를 골라 토론하거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보고 직접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우리의 '해 본 경험'은 웹진의 형태로 아카이브를 했어요. 매월 다루어지는 주제와 매거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그 커뮤니티가 해당 이슈를 더 깊게 끌고 가는 모델을 상상하며 만들었습니다.
첫 이슈는 '여성'이었고, 저는 그동안 답답했지만 꺼내지 못했던 저의 경험, "택시를 탔는데 자꾸 저한테 반말해요"라는 문제를 제기해서 공감받고, 남녀의 택시경험을 비교하는 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창 장미대선이 준비되고 있을 때라 대선 후보들의 여성정책을 보기도 했어요.
정치라는 것을 내가 재미있는 방식으로 풀어 해볼 수 있다는 것,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하면 더 즐겁게 추진력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제게 '편집장'이라는 직함과 더불어 해보고 싶던 모양의 캠페인으로 이슈를 풀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고마운 장면입니다.
http://zine.wouldyouparty.org/
2017년 4월,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빠띠는 누구나 세월호참사의 기록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이를 통해 세월호참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세월호 아카이브'를 만들었습니다. '특집'을 통해 방대한 자료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보기도 하고, 참사 곁에서 힘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한 코너<세월호와 나>를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멤버들이 모두 조금씩 아팠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요.
저는 아카이브 안에 들어갈 글 작업과 <세월호와 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날을 좀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세월호 우산'을 만들어 판매한 서명아님을 만난 날이 기억이 납니다. 막 봄이 시작될 무렵, 그래서 평소보다 좀 가벼운 옷을 입고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명아님을 만났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과 대답을 이어나가면서 서로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바라보고, 또 무거운 침묵 속에서 대답을 기다리던 시간을 같이 지나갔어요. 10대 후반에 프로젝트를 시작해 이제 20대 초반이 된 명아님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금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통해 저도 지금 제가 할 일이 뭔지 정확히 알고, 그걸 잘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아카이브는 두 번째 특집을 준비하고 있고, 곧 오픈됩니다. 기록함으로 사회적 기억을 보존하는 일을 빠띠는 계속 해나가려고 해요.
2017년 9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지난 8월 말, 초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선생님에 대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닷페이스와 우주당은 온라인 캠페인을 열고 '학교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를 얘기하는 공론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단체들과 연대해 '페미니스트 선생님에 대한 공격을 멈춰라'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하기도 했어요. 단시간에 많은 의견들과 서명이 모아졌고 가까이 있지 않지만 응원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게된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관련된 이슈에 함께 목소리를 내려고 하고 있고, 이때 모아진 시민들의 의견이 묶여 책으로 나오기도 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캠페인은 어떤 모양일까?를 고민하게 한 장면이기도 하고, 기존의 기자회견과 다른 기자회견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질문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미래혁신포럼에서 비르기따를 만나다!
작년 한 해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아닐까요? 민주주의와 관련된 많은 토론과 컨퍼런스가 열렸고, 덕분에 빠띠는 관련된 주제로 발표하거나 빠띠/우주당을 소개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가을에는 그 기회가 더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서울시에서 개최한 <미래혁신포럼>입니다. 이 포럼의 두 개의 세션에서 빠띠, 그리고 우주당에 대해 소개했어요.
미래혁신포럼은 2016년 10월 이후, 우리사회가 맞이한 변화 앞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하고, 오픈소스 및 데이터, 커먼즈, 새로운 소통의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확대할지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시민들이 모였고, 다른 나라에서 이를 일궈가고 있는 활동가들도 함께 했습니다. 저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민들의 민주주의 이야기>세션에서 우주당 소개를 맡았어요. 우주당의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지만 시기상조 아니냐'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는데, 이 세션에서는 무엇을 말하든 지지받고 격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우주당이 처음 만들어질 때 참고하기도 했던 아이슬란드 해적당의 비르기따를 만났다는 것도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유튜브나 책에서 만났던, 새로운 정치를 이끌고 있는 대가를 직접 만났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임하고 있는 여성 정치인을 만났다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어요. 제 삶은 제가 만들어가지만, 만들어가는 길이 틀린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는 필요하거든요. 여성이자 정치에 관심있는 시민으로서 비르기따를 만나 대화를 나눈 북촌의 어느 카페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꾸준히 하려면 번아웃되면 안되고, 주변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또 지지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비르기따가 해주었는데, 가끔 떠올리며 힘을 내곤 합니다.
▼미래혁신포럼 '우리가 주인이당!' 발표자료 보기
2017년 10월,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 <민주주의 서울> 팝업 이벤트
9월에 국회 기자회견을 하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면, 기자들이 정론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하고 싶으면 어디서 하지? 기자들이 오지 않는 기자회견은 기자회견일까? 하는 질문이요.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는 많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깜짝 기자회견이라는 팝업 이벤트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빠띠가 운영/자문을 맡고 있는 <민주주의 서울>을 런칭하면서 플랫폼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또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10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열 다섯명 정도의 배우들이 기자가 되어 마이크 앞에 우연히 서게 된 시민들에게 질문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민 깜짝 기자회견'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해주셨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진지한 대답으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신 분들도 계셨어요. 결혼을 앞둔 청년, 은퇴를 앞둔 비혼 여성, 나들이를 나온 5인 가족, 취직을 위해 스펙을 만들러 서울에 온 대학생, 서울에 살고 싶지만 비싸서 살지 못하는 수도권의 시민 등 미리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시민들이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딱딱한 공청회도 필요하지만, 편안하고 재미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이벤트였어요. 빠띠도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이를 행정부처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8년 1월, "너의 잘못이 아니야" : 아청법개정 관련 간담회
지난 12월 중순, 가브크래프트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개정 촉구를 위한 서명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닷페이스와 십대여성인권센터가 함께 진행하는 '#피해자를_피해자로' 캠페인에 빠띠도 온라인 캠페인으로 함께 했어요. 이 서명에는 12899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자신의 의견을 담은 메일을 국회의원에게 직접 보내는 행동도 이어졌습니다.
http://govcraft.org/petitions/68
2월 8일에는 온라인에서 모인 의견들을 가지고 국회로 갔어요. 서명 페이지에 모인 만 이천개의 의견들은 이백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묶여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전달되었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직접 참여하고, 이에 관심있는 시민들이 함께한 간담회에서는 이 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습니다. 토론 중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다함께 말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어느 때보다 힘주어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큰소리로 얘기했는데, 목이 메어 생각만큼 큰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후일담.
의원실에 찾아가 서명을 전달하고 국회를 걸어 나오는데, 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 들었어요. 첫 커리어를 시민단체의 정책연구소에서 시작해서 국회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동안은 느끼지 못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생각과 방법으로 캠페인을 하고 그 목소리가 마침내 전달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목소리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개정안은 국회 여가위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고 저는 이 법안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개정되는지 끝까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2018년 2월, 캠페인 굿즈들이 모이는 캠페인 사이트, 빠띠 굿즈샵 오픈
저는 캠페인 굿즈 덕후입니다. 사이드프로젝트로 굿즈를 직접 만들어 팔기도 했죠. 빠띠 멤버들 역시 굿즈를 모으고, 또 후원하는 일을 일상으로 하고 있어요. 굿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굿즈를 다 모아서 그 자체로 캠페인을 하고, 시민들이 캠페인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덕후들이 만든 덕질 플랫폼, 캠페인 덕후들을 위한 굿즈 큐레이션 서비스 '빠띠 굿즈숍'이 오픈되었습니다.
http://partiunion.org/products
런칭이벤트로 3.8 여성의 날 기념 럭키박스를 만들었어요. 광장에 나가서도, 또는 나가지 못하더라도 어디서나 여성의 날 캠페인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박스! 스티커와 피켓, 테이프, 책, 달력이 알차게 담겨있는 박스를 굿즈숍에서 판매하고 있어요.(여잔히 판매 중입니다...음?)
굿즈숍은 앞으로 꾸준히 운영될 예정입니다. '요즘 어떤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지? 내가 후원할 단체는 어디일까?'가 문득 궁금해졌을 때 방문할 수 있는 플랫폼, 굿즈 구입에서 시작해 직접 무브먼트에 참여도 할 수 있는 캠페인 플랫폼이 되는 것을 꿈꾸면서요.
저는 Parti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년 동안 여기 정리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즐겁게 했고, 시민의 직접 정치참여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캠페이너에게 필요한 것,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해야 할 고민, 그리고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혀가는 일을 경험했어요. 또 '정치엔 답이 없다'는 제 안의 확신은 '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으로 변하기도 했어요. 이 경험은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되든지 제게 남아서 더 나은 시민, 더 잘하는 기획자가 될 수 있도록 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빠띠의 유저로서, 가브크래프트의 팬으로서, 저만의 캠페인과 행동도 계속해보려고 해요.
그동안 함께 한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민주주의 활동가로 Parti 밖에서 응원하고 협력하는 또 다른 동료가 될게요. 일상 속에서 또 만나요!
SNS에 포스팅을 하고 마지막에 달았던 슬로건을 마지막으로 쓰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해요.
안녕.
* Parti, 민주적 삶과 문화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