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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19. 2018

나는 혁신농부인 것일까

N잡러로 <기승전런>에 다녀왔다

일이란 ‘관계’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1.

한 두 달쯤 되었나. 스스로 공부를 너무 안한다고 생각한 게. 안에 있는 걸 계속 퍼서 사용한다는 기분만 들고, 지적으로 채워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음만 먹고 하지 않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정보를 더 담아서 발표해야 할 기회가 생겼고, 오랜만에 공부하는 기분을 느끼며 준비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내가 더 많은 여성들이 무대에 서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뭔가를 발표하고 전달하려면 그게 정리되고 내 언어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준비하는 사람에게 남는 것이 분명있다. 그런 기회가 공평해져야 한다는 거다. 


2.

어제 온더레코드의 초대로 <기승전런>행사의 스피커로 서게 되었다. 연사 세 명이 각각 가진 주제가 교차적으로 만나, 같은 주제이지만 다른 각도로 얘기할 수 있는 기획이다. 미래와 전문성, 조직이라는 키워드가 다르게 조합되어 무대에 오른다. 


<기승전런> 보기 : https://brunch.co.kr/@ontherecord/41


작년 한 해 N잡 실험을 하면서 이 주제를 개인의 실험 결과로만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래/정책과 엮어서, 조직문화와 엮어서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았다. 첫 시간은 미래X전문성으로 내가 '전문성'파트를, 이원재대표님이 '미래' 파트를 맡아 발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원재님은 미래 사회와 관련된 이슈를 정책연구의 렌즈로, 나는 전문성이라는 어찌보면 개인적인 이슈를 경험적인 렌즈로 얘기했다.


사전 미팅을 같이 했던 것은 아닌데, 기획자인 키님이 각각의 미팅을 잘 정리해서 공유해주신 덕인지 이야기가 연결되는 지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원재님이 일이란 것이 ‘관계’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앞으로 일을 할 때 일하는 개인들이 ‘맥락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길했다. 그 맥락이라는 것이 결국 ‘세상과 나의 관계, 내 옆 사람과 나의 관계, 일과 나의 관계’를 내 언어로 정리하는 일이라고.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가 층층이 쌓이면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고, 어떤 것은 함께 답을 고민해보기도 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3.

쉬는 시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분이 오셔서 “진아님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또 일을 하다보니까 12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요즘 친구들은 3년 정도 하면 뭐든 안다고 하는 것 같다. 그건 문제 아니냐?”라고 질문하셨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사람들을 보고 질문을 주셨는지 잘 알겠지만, 많은 것이 간과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 세대의 전문성은 어떻게 길러져야 할지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얘기인 것이다. 단군 이래 가장 공부를 많이 했지만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세대, 매일 20대 청년 실업률이 경신되는 세대, 경력있는 신입들이 먼저 일자리를 얻기 때문에 훈습의 시간이 줄어드는 세대인 우리는 1만 시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분절되는 일 서사의 중심에 어떤 상황에서도 분절되지 않을 ‘나’를 놓고, 그 맥락을 내가 만들어 나가면 어떻냐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1만 시간이 필요없는 일도 있지 않나. 빨리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그것에 노출되었다면. 12년 차의 연륜과 네트워크와 권위 대신 3년을 일 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전문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정의해야한다는 얘기가 누군가에겐 밀레니얼의 대책없는 전능감으로만 해석된다는 것이 서글펐다. 좋든 싫든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고, 어떤 방법으로든 설득하며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4.

마지막에 원재님이 지금 내가 느끼는 변화와 하고 있는 일들을 ‘농업혁명 때 씨를 심고 일년을 기다린 혁신농부의 자세’로 설명해 주신 순간에 개인적으로 격려가 되었다. 그 농부들도 기다리는 동안에는 결국 모두가 농부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들이 혁신농부인지 아닌지는 결국 ‘농사라는 게 되더라’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전까지는 지금 우리가 세운 가설을 믿고 계속해 보는 방법 밖엔 없을 거다. 그리고 해봤는데 아니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게 느껴졌다면 해봐야 만족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기다리고 수확하고 또 심어보는 수 밖에. 산업혁명이 오지 않더라도, 씨를 심었으니 뭐라도 나겠지.


5.

8월 31일엔 '조직문화'와 크로스하여 개인의 전문성에 대해 한 번 더 얘기한다. "우리는 N잡러와 일할 수 있는 조직인가요?"라는 질문은 지금 내게도 되게 중요하다. 왜냐면 내가 만들 조직은 과연 N잡러와 어떻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마구 내뱉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며(?) 생각하고 있는데, 이걸 함께 얘기해 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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