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의 '가까스로, 인간'을 광장에서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고백을 해보자.
4월 16일 이후로 많은 날들에 나는 세계가 존나 망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무력해서 단념하고 온갖 것을 다 혐오했다. 그것 역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여유라는 것을 나는 7월 24일 서울광장에서 알게 되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백 일이 되는 날, 안산에서 서울광장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온 유가족을 대표해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녀는 말했다. 엄마아빠는 이제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싸울 거야.
나는 그것을 듣고 비로소 내 절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다 같이 망하고 있으므로 질문해도 소용없다고 내가 생각해버린 그 세상에 대고, 유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공간, 세월이라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을, 말하자면 내가 이미 믿음을 거둬버린 세계의 어느 구석을 믿어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뭘 할까.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와 꼭 같은 정도로 내가 망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밤의 맨 가장자리에서 그 뒷모습들을 보았다. 팔꿈치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저마다의 진심으로 박수를 치던 사람들. 그 뒷모습들이 저 밤바다에서 보았던 수평선과 같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압도적인 검은 것 위에 세월이 마냥 막막하게 떠 있지 않도록 하는 것. 그 팔꿈치들의 간격이, 그 광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렸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백해야겠다. 그 점점한 아름다움을 믿겠다. 그러니 누구든 응답하라.
이내 답신을 달라.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에서
떠들썩하고, 흥분되고, 또 걱정도 되던 어제가 지나고 아무 일 없이 조용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냈다. 하루를 마무리하다가 어제 광장에서 생각났던 황정은의 문장들을 필사한다. 서로 막막하게 떠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물음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해야하는 일은 뭘까, 생각한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거나 성급히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빨리 기뻐하지도, 또 빨리 실망하지도 말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함께 가는 사람이 되길. 다시 일주일.
_2016년 11월 13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