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을 읽다
일이 많아지면 소설이나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한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글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 이건 일종의 회피기제 같은 것인데, 내겐 문학이 유용함과는 상관없는, 쓸모없어서 아름다운 그런 영역인 것이다. 그래도 뭔가 세상에 쓸데있는 일들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게 조금만 과중되면 그것과는 상관없는 일, 그 중에서 내 생각에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일로 피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금방 든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이 주는 긴장과 기쁨을 느끼며 2주를 보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내 마음과 시간, 에너지를 그 일에 온통 쏟는데 그래서인지 지난 주말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책장에서 뽑아 읽었다. 귀퉁이를 접어놓은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이 실린 평론을 읽었다. 다시 한 번 귀퉁이를 접은 부분은 2005년 발표된 시들에 대한 평론. 신형철은 그 시들을 '뉴웨이브'라고 명명하고, 이렇게 썼다.
시는 하찮은 것이다. 시가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시는 하찮은 것이지만 다른 대단한 것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주체들이 앓고 있는 증상들을 언어라는 가장 기초적 수단을 통해 표현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시는 가장 근본주의적으로 하찮고 가장 진실하게 사소한 그 무엇이다. 도착적이고 반고백적이며 환상적이고 비계몽적인 이들의 시는 불투명한 우리시대가 낳은 가장 투명한 증상들이다. 물론 진실은 언제나 건강한 자들이 아니라 앓는 자들의 편에 있다.
- 신형철, '진실은 앓는 자들의 편에' <몰락의 에티카>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 쓸모없는 아름다움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잊고 사는지를 늘 일깨워준다. 자극적인 뉴스도 설득하지 못하는 아픔과 비애, 선명한 사진도 보여주지 못하는 치부를 알게 한다. 곧 부끄러워질 많은 일들을 하고 살지만, 적어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아는 감각을 벼르기 위하여, 문학을 읽는다. 너무 비장한 동기이지만, 내가 읽고 마음을 쓰는 작품들은 모두 내게 그 감각을 알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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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업무에 대한 예기불안 때문인지,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종일 졸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최대한 작게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이런 날은 어쩐지 나를 위한 요리를 한바탕 해야 할 것 같아서 썰고 볶고 구워서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는 해야 할 일들을 피해 방으로 숨어 들어가서 제 15회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을 읽기 시작했다. 한강이 쓴 작품이 수상작이었는데, 김애란과 황정은이 쓴 소설이 실려있다는 이유로 샀고, 두 소설을 읽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책이다. 표제작이자 수장작인, 한강의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을 읽었다.
이렇게 오래 살아가는 것들 아래 있으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해치지만 않으면, 어쩌다 불이 나거나 벼락만 맞지 않으면 수백 년도 살 수 있는 것들 아래에서, 이렇게 짧게 꼬물꼬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다음 달, 다음 해, 아니, 오 분 뒤 일조차 우린 알지 못하잖아. 그렇게 시간에 갇혀서 서로 찌르고 찔리면서 꿈틀거리잖아.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어딘가 있다 해도, 그가 우릴 사랑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상처 난 벌레를 보듯 혐오하지 않을까? 무관심하지 않을까? 기껏해야 동정하지 않을까? -p.39
이야기가 재미없지요?
자문자답하며 나는 웃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봄부터 매일 생각했어요.
방금 뱉은 것이 낯익은 문장이란 사실을 문득 깨닫고 나는 말을 멈췄다. -p.22
거기서 멈췄다. 더 쓸 수 없었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생생했기 때문이다. -p.45
해직기자로 투쟁하다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한강의 실제 선배를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 소설의 배경을 알고 다시 생각하니 소설이라기 보다는 아주 긴 애도시가 아니었나, 하고.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울었다.
결국 고통 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그 고통에 대해 쓸 수 있음을 깨달은 주인공을 통해 한강은 문학의 불가능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계속 해보겠다는 다짐도 함께. 늘 '앓는' 사람들이었던 그 조그만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윤리적 선택을 했듯이, 불가능함이 가진 가능성을 바라보며 계속 쓰는 것이 한강이 선택한 윤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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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오지 않은 한국소설도 이미 낡은 것이 된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서 읽고 내 자리를 다시 확인하는 것은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적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 때문에 기꺼이 하게 되는, 그런.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다. 간절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건강히 일하고 건강히 읽기. 이 균형이 어떻게 맞추어져 가는지 알아가는 봄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