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bara
검은 컷트머리와 옷차림에 그윽한 눈빛으로 슬픔을 노래했던 Barbara. 유대인 가정의 딸로 태어난 것부터 슬픔의 운명을 직감했겠죠. 유대인 아버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자취를 감추었고 가정으로부터의 상처와 전쟁의 슬픔은 그녀의 노래들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씻을 수 없는 상흔이자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애정의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10살 때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요. 사후 발간된 회고록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나쁜 일은 잊었어요. 나의 가장 큰 절망은 아버지에게 당신을 그토록 증오했다는 말 한마디를 던질 수 없않다는 거에요. “나는 당신을 용서해요. 편히 잠드세요. 나는 노래를 부르기에 그 고통에서 빠져나왔어요.””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복잡한 심경은 대표곡 l’aigle noir(검은 독수리)와 Nantes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검은 독수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석이 분분한데요. 아버지라는 해석도 있고 2차세계대전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는데, Barbara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어요. 그저 자신은 노래를 부를 뿐이라고 했죠. 그 만큼 함축적 의미가 가득한 가사입니다. Nantes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곳입니다.)
오늘 서론이 많이 길었네요. 제가 고른 노래는 Le mal de vivre(삶의 고통)입니다. 1965년 노래에요.
Ça ne prévient pas quand ça arrive
Ça vient de loin
Ça c'est promené de rive en rive
La gueule en coin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지
저 멀리서 오지
파도에 실려 다가오는
모습을 감춘 채
Et puis un matin, au réveil
C'est presque rien
Mais c'est là, ça vous ensommeille
Au creux des reins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거의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저기서, 빈틈을 타고
졸음을 일으키지
Le mal de vivre
Le mal de vivre
Qu'il faut bien vivre
Vaille que vivre
삶의 고통
삶의 고통
잘 살아야 해
살아갈 가치가 있으니
On peut le mettre en bandoulière
Ou comme un bijou à la main
Comme une fleur en boutonnière
Ou juste à la pointe du sein
멜빵에 넣을 수 있지
아니면 손안에 든 보석처럼
단추구멍의 꽃처럼
단지 가슴 끝에 놓을 수도 있지
C'est pas forcément la misère
C'est pas Valmy, c'est pas Verdun
Mais c'est des larmes aux paupières
Au jour qui meurt, au jour qui vient
반드시 절망인 것만은 아냐
Valmy도 Verdun도 아냐
(각각 혁명전쟁과 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로, 전쟁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눈을 감는 날, 다가오는 날
눈꺼풀 위에 흐르는 눈물이지
Qu'on soit de Rome ou d'Amérique
Qu'on soit de Londres ou de Pékin
Qu'on soit d'Egypte ou bien d'Afrique
Ou de la porte Saint-Martin
로마나 미국에서 오든
런던이나 베이징에서 오둔
이집트나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오든
Saint-Martin의 문에서 오든
On fait tous la même prière
On fait tous le même chemin
Qu'il est long lorsqu'il faut le faire
Avec son mal au creux des reins
우한 같은 기도를 하고
같은 길을 걷지
빈틈을 타고 숨은 고통을 안고
이것들을 해야 하는 시간은 길지
Ils ont beau vouloir nous comprendre
Ceux qui nous viennent les mains nues
Nous ne voulons plus les entendre
On ne peut pas, on n'en peut plus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고 싶어하고
빈 손으로 우리릴 찾아오지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없어 더 이상 그럴 수 없어
Et tous seuls dans le silence
D'une nuit qui n'en finit plus
Voilà que soudain on y pense
À ceux qui n'en sont pas revenus
끝나지 않는 밤의 침묵 속
고독한 자들
이것봐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갑자기 생각하잖아
Du mal de vivre
Leur mal de vivre
Qu'ils devaient vivre
Vaille que vivre
삶의 고통으로부터
고통으로부터
그들은 살아야 해
살아갈 가치가 있으니
Ça ne prévient pas quand ça arrive
Ça vient de loin
Ça c'est promené de rive en rive
La gueule en coin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지
저 멀리서 오지
파도에 실려 다가오는
모습을 감춘 채
Et puis un matin, au réveil
C'est presque rien
Mais c'est là, ça vous émerveille
Au creux des reins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거의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저기서, 빈틈을 타고
당신을 감탄시키지
La joie de vivre
La joie de vivre
Oh, viens la vivre
Ta joie de vivre
삶의 환희
삶의 환회
여기 와서 살아가자
그대의 삶의 환희
삶의 고통이 당신을 무기력하게 하는(ensommeille) 데에서 가탄시키는(émerveille)는 존재가 된다는 것. 절망의 끝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것일까요. 이 절실함이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huvNyRKMaO0
2017년 Barbara라는 영화가 소개되었는데요. Barbara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자신이 연기하는 바르바라와 실제 배우의 자아가 뒤엉키고 혼재하며 전개되는 기묘한 영화입니다. 바르바라 평전도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으셔도 좋겠네요
https://youtu.be/vQLwhY_kqF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