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is Vian
작년 5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 Monsieur le Président, Je vous fais une lettre que vous lirez peut-être si vous avez le temps ».
이 문장은 오늘 들어볼 노래인 Boris Vian의 Le déserteur(탈영병)의 첫 가사입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소설에 프랑스의 여러 노래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보리스 비앙은 소설가, 재즈 뮤지션, 가수, 시인, 공학자, 배우 등 다재다능한 삶을 살았고, 1959년 안타깝게도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재였습니다. 미셸 공드리의 영화 <무드 인디고>의 원작인 <세월의 거품(écumes des jours)>을 쓴 작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 같아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예견한, 달콤하고 사랑스러움 속에 무시무시함을 내포한 작품이었죠.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그것도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분명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이 사회를 구제해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겠죠. 편지의 첫 문장에 이 노래를 인용하는 이유는, 아래 가사를 통해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Monsieur le Président
Je vous fais une lettre
Que vous lirez peut-être
Si vous avez le temps
Je viens de recevoir
Mes papiers militaires
Pour partir à la guerre
Avant mercredi soir
대통령님
편지를 올립니다
시간이 있다면 아마
읽으시겠지요
수요일 저녁 전에
전장으로 떠나라는 징집장을
막 받았어요.
Monsieur le Président
Je ne veux pas la faire
Je ne suis pas sur terre
Pour tuer des pauvres gens
C'est pas pour vous fâcher
Il faut que je vous dise
Ma décision est prise
Je m'en vais déserter
대통령님
저는 갈 수 없어요
저는 불쌍한 사람을 죽이려고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을 노하게 하려려는 게 아닙니다
내가 결심했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야겠어요
저는 탈영할거에요
Depuis que je suis né
J'ai vu mourir mon père
J'ai vu partir mes frères
Et pleurer mes enfants
Ma mère a tant souffert
Qu'elle est dedans sa tombe
Et se moque des bombes
Et se moque des vers
제가 태어난 후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고
형제들이 떠나는 걸
제 아이들이 우는 것을 보았죠
어머니는 고통스러워한 나머지
무덤에 묻혀 있죠
그리고 폭탄을 비웃고
벌레들을 비웃죠
Quand j'étais prisonnier
on m'a volé ma femme,
on m'a volé mon âme,
et tout mon cher passé.
Demain de bon matin,
je fermerai ma porte
au nez des années mortes
j'irai sur les chemins.
내가 수감되었을때
나의 여인이 떠나갔고
영혼마저 탈취당하고
나의 아름다운 과거마저 사라졌죠
밝은 내일의 아침,나의 죽은 날들에 문을 닫고
나의 길을 걸어갈거에요
Je mendierai ma vie
Sur les routes de France
De Bretagne en Provence
Et je dirai aux gens
Refusez d'obéir
Refusez de la faire
N'allez pas à la guerre
Refusez de partir
브르타뉴에서 프로방스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곳곳을 거닐며
구걸할거에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할거에요
복종하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전장에 가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S'il faut donner son sang
Allez donner le vôtre
Vous êtes bon apôtre
Monsieur le Président
Si vous me poursuivez
Prévenez vos gendarmes
Que je n'aurai pas d'armes
Et qu'ils pourront tirer
피를 바쳐야 한다면
당신의 피나 바치세요
각하님은
훌륭한 전도사시니까요
만약 나를 쫓아온다면
경찰들에게 알리세요
난 무장하지 않을 거고
그들이 날 쏠수 있다는 것을요
이 노래가 발표된 건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의 마지막 해입니다. 프랑스군은 베트남 진영에 패배했고, 같은 해 7월 21일 제네바조약을 통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가 독립했는데요. 이 시기즈음 알제리에서도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테러가 빈번하면서 알제리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노래도 인도차이나 전쟁을 반영했거나 알제리 전쟁이라는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어두운 시대를 생각하며 만들어졌겠죠.
아니 에르노의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 Ni bâillonner durablement nos libertés démocratiques, aujourd’hui restreintes, liberté qui permet à ma lettre – contrairement à celle de Boris Vian, interdite de radio – d’être lue ce matin sur les ondes d’une radio nationale."
오늘날 제한된, 우리의 민주적 자유에 계속 재갈을 물리지 않을 거에요. 보리스비앙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금지되었던 때와는 달리, 지금 아침 국영 라디오를 통해 이 편지가 읽어질 수 있는 자유를.
보리스 비앙의 노래는 당연히 전쟁에 승리해야 하는 프랑스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겠죠. 그래서 알제리 전쟁 기간 동안 이노래는 방송금지를 당했었습니다. 아니 에르노는 이 노래를 통해,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시기와, 오늘날 코로나19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국민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국가가 결코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Boris Vian 뿐만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들이 부르고,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요. Boris Vian과 함께 가장 유명한 Mouloudji의 버전에는, 첫 부분에 Mr.President라는 단어가 Messieurs qu'on nomme grands(친해하는 분들께)로, "탈영하겠다고 결정했다"는 부분을 les guerres sont des bêtises, le monde en a assez (전쟁은 끔찍해요, 이미 이 세계가 충분히 겪었어요)라고 부름으로써 다소 순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전 아무래도 Boris Vian 버전이 더 좋아요. 목소리가 까랑까랑한 게 제 취향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jndTXyk3mw
https://www.youtube.com/watch?v=5uPxyRYI4K0
<남과 여>, <레드>, <아무르> 등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존경받고 있는 프랑스 배우 장 루이 트렝티냥의 낭송버전도 보시구요.
https://www.youtube.com/watch?v=-zaaSa7GVe0
제가 보리스 비앙을 정말 좋아해서, 다른 노래들 몇 곡도 더 남기려고 하는데요. 허세남의 극단을 보여주는 J'suis snob, 물질주의적 사회를 풍자하는 La comlainte du progrès도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FdYZQmQtcs
https://www.youtube.com/watch?v=9PTqTjHs5c0&t=1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