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별이 된 알제리 뮤지션들의 노래
코로나19 시대에 재조명받은 소설 <페스트>. 페스트의 배경은 알제리의 오랑(Oran)으로, 작가 알베르 카뮈가 자란 도시이다. 알베르 카뮈처럼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시절 거주했던 프랑스인들은 "Pied Noir"라고 일컫는데, 알제리는 프랑스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북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큰 국가였고 자원이 풍부했기에 프랑스의 침탈의 욕망이 가장 큰 나라였고 이로 인해 알제리도 프랑스에 더욱 깊게 종속되어 간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내가 알제리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도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였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알제리를 여행하면서 잠겼던 상념을 철학적으로 기술한 책이고 그의 책 속 알제리는 낯선 방문객에게 무한한 생각의 나래를 펼쳐주는 곳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 어느 자연환경보다도 사막에 대한 경외감과 동겸이 높았기에, 모로코-튀니지-알제리로 이어지는 사하라 사막에 걸친 북아프리카국은 언제나 나의 꿈이었다.
그 중에서도 알제리는, 아무래도 여행의 측면에서는 다른 두나라에 비해 덜 알려져 있고, 치안도 상대적으로 더 불안했기에 조금 멀리 느껴졌지만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 그리고 우연히 중고 CD를 통해 알게 된 알제리 가수 Rachid Taha를 통해 호기심이 자라났다. 그리고 이후에 Yamina Khadra, Assia Djebar 등의 알제리 문인 들을 통해 알제리와 아랍 사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고, 작년 상반기에는 20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독재시절을 종식하고 퇴진한 압델라티프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소식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5월에는 알제리 베르베르 문화를 대표하는 뮤지션 Idir가 세상을 떠났고, 2년전 9월에는 Rachid Taha가 방랑의 별이 되었다. 9월에 태어나 9월에 먼 길을 떠난 라시드 타하. 2년 전 10월 휴가로 방문했던 튀니지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 그 친구들을 통해 내가 좋아했던 2명의 뮤지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중 한명이 라시드 타하였고, 나머지 한 명은 훗날 다른 글을 통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알제리는 흔히 원주민으로 일컬어지는 베르베르족, 훗날 역사적으로 유입된 아랍인들, 그리고 식민지배를 가했던 프랑스인과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머무르며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는데, 음악 역시 다양한 양식을 꽃피운다. 라시드 타하와 이드르 역시 각기 다른 알제리의 음악 장르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프랑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알제리의 음악을 월드뮤직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2018년과 올해 5월, 영원한 방랑의 여정을 따라간 두 알제리 뮤지션의 대표적인 노래들을 들어보려고 한다.
1) Ya Rayah - Rachid Taha
가히 알제리를 대표하는 국민 노래라고 하면 Ya Rayah이지 않을까. 라시드 타하가 세상을 떠나고 프랑스 팝 차트에 그의 노래 Ya Rayah가 재진입했다고 하니, Rachid Taha는 곧 Ya Rayah이자, Ya Rayah가 곧 Rachid Taha라고 할 수 있겠다. Ya Rayah는 "방랑자"라는 뜻으로, 원래는 1973년 Dahmane El Harrachi가 작곡한, 알제리 민중음악인 Chaabi 스타일의 곡으로 1993년 Rachid Taha가 이를 재해석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Rachid Taha는 알제리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인 Rai 뮤지션으로, 알제리의 음악장르에 Rock을 접목하여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직 식견이 부족한 관계로 Chaabi와 Rai의 정확한 차이는 좀 더 공부해야 알 수 있는 상황이고, 막연히 Ya Rayah도 Rai 장르의 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오랜 식민지배를 겪었던 알제리는 알제리전쟁을 거쳐 1962년에 독립을 쟁취하지만 정국적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많은 알제리 젊은이들은 프랑스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알제리 전쟁 중에 프랑스 군에 의해 징집되었다가 종전 후, 본국에서의 멸시와 비난이 두려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 머물러야 했던 알제리인들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방랑은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노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길을 떠나야 했던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헌사이다.
방랑자여, 어디로 가는가?
너는 곧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올 거야.
너와 나 이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여정을 후회했지.
يا الرَايح وين مسافر تروح تعيا وتولي
شحال ندموا العباد الغافلين قبلك وقبلي
يا الرَايح وين مسافر تروح تعيا وتولي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너의 심장은 왜 이리 슬픈가? 왜 이리 절망스러운가?
https://www.youtube.com/watch?v=vBu2OXGWBFI
오랜 방랑으로 지치고 힘들어하던 방랑자에게, 마지막으로 화자는 너, 방랑자의 마음이 곧 창조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방랑의 끝에 안식에 다다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안식은 방랑자가 그리도 원하던 정착과 안정감의 순간일까?
자조적인 가사의 분위기와는 달리, Rachid Taha의 노래는 아랍의 전통 악기들이 어우러져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타향에서의 외로움과 설움, 그리고 인종차별을 견뎌왔을 라시드의 목소리를 통해 한의 감정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오늘날에도 전쟁,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이 노래의 의미와 가치는 오랜 시간을 지나도 불씨가 되어 빛을 밝힐 것이다.
2) A Vava Inouva - Idir
알제리의 원주민으로 여겨지는 베르베르족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전승해 오고 있는데, 그들이 쓰는 고유언어 Kabyle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베르베르"라는 용어 자체가 "야만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명사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지만 역시나 지식의 부족으로 여기서는 "베르베르 족"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아시아 제바르의 소설 <프랑스어의 실종>의 주석을 보면, 베르베르족은 주변과 소외된 지리적 여건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열악하여,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인들에 유화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알제리의 독립 후, 아랍계 민족의 차별로 이어진다고 되어있다. Idir는 베르베르 족 출신 뮤지션으로, Kabyle 어로 노래함으로써 베르베르 족의 문화와 예술을 음악을 통해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데뷔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아. 1973년, 한 라디오 채널에서 노래하기로 했던 Nouara라는 가수가 갑자기 출연을 못하게 되어 대신 출연하게 되었고, 그 때 부른 노래가 A Vava Inouva인데 이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막상 그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며칠 후 군에 징집되어 자신이 유명인이 된 줄은 전혀 몰랐다가, 제대 후 이를 알게 되고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A Vava Inouva는 "나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베르베르 인들에게 오랫동안 내려져 온 자장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한 소녀가 숲의 괴물들로 인해 위험해 처한 아버지를 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Idir은 이 노래의 가사를 통해, 전통 설화에서 더 나아가 알제리를 위협하는 프랑스 등의 외부세력, 정부의 폭정에 대항하고자 하는 탈식민주의와 저항의 목소리를 노래한다.
아버지, 문을 열어줘요.
저는 무서워요, 숲의 괴물들이 왔어요.
Txilek elli yi n taburt a Vava Inouva
Ccencen tizebgatin-im a yelli Ghriba
Ugadegh lwahc elghaba a Vava Inouva
Ugadegh ula d nekkini a yelli Ghriba
https://www.youtube.com/watch?v=FdEJxeMgjxA
노래에는 숲, 달, 별, 눈 등 동화에서 나올법한 모티브들이 등장하고, 화자가 소녀로 설정되어 있어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아. Idir는 이러한 이야기를 토대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은연중에 내비쳤고, 베르베르인이라는, Rachid Taha와는 또 다른 차원의 정체성을 가지고 소수로서의 베르베르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2018년에는 알제리로 돌아가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퇴진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방랑의 길. 방랑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국가와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하고 음악을 방랑의 매개체로 자신들만의 끝없는 여정을 이어갔던 알제리의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막의 길에서 작은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듯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긴 여정의 끝에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 곳은 어떤 곳일까. 그 곳이 있다는 것 자체로 나에게 위안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