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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ques Aug 08. 2022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Verdens verste menneske

마치 나의 마음을 간파한 듯이, 기적적으로 영화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으며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를 증폭시킨 노르웨이 영화 한편이 이제 곧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지난 주말 프리미어 상영을 통해 먼저 이 영화와 만날 수 있었는데요. 제 나이대라면 남녀 관계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의 휘청거리는 마음과 설렘, 슬픔 등이 오롯이 담겨 있어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소개될 이 영화의 원제는 Verdens verste menneske. 영어로 하면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즉 "세상 최악의 인간(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텐데요. 영화를 보니까, 30대를 앞둔 주인공 율리에의 사랑과 방황,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상황들이 주가 되어 한국 제목과 노르웨이 제목 모두 영화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 이루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리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하더라도 그 결과가 항상 원하는 대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세상 최악의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전에, 내가 내 자신을 도저히 긍정할 수 없는 순간들도 찾아오지요. 이 영화는 그런 순간들을 어느 한쪽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채 감각적인 연출과 깊은 성챂이 담긴 각본을 통해 스토리가 가질 수 있는 진부함을 극복하고 관객들의 공감과 여운을 자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내 인생이지만 내 자신이 조연이 된 것 같은 기분,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내 마음, 다들 살면서 한 번 쯤은 겪어보시지 않았을까요? 


아름답고 세련된 오슬로 풍광 속에 재즈, 보사노바,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등장하여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기도 하는데요. 율리에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음악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네 곡을 한번 소개하고 들어보려고 해요. 


먼저, 30세의 율리에의 인생에서 첫번째 남자인 악셀이 다가와 그와 함께하는 삶을 시작하는 순간, 빌리 홀리데이가 고즈넉한 목소리로 부르는 "The way you look tonight"가 흐르는데요. 이 노래는 저의 인생 로맨틱 코메디인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도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 노래였죠. 이 영화속에선 주인공들의 목소리와 더불어, Tony Bennett의 목소리로 애잔한 느낌이 강했다면, 빌리 홀리데이의 버전에서는 새로운 삶을 앞둔 주인공의 설렘을 가득 담은 듯한 활기가 느껴집니다. 


https://youtu.be/Tw4QYD7E62o


영원할 것 같았지만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 두 번째 남자인 에어빈드와는 조금 더 과감하고 정열적인 관계가 형성되는데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Harry nilson이 부르는 "I said goodbye to me"가 이들의 새로운 열정을 환영합니다. Everybody's Takin'으로 유명한 1968년 앨범 <Aerial Ballet>의 수록곡으로, 그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그 모든 것과 작별을 떠나고 앞으로 걸어나겠다는 가사가 새로운 사람과의 걸음을 앞둔 율리에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여 영화를 기다리는 시네필들의 마음에 미리불을 지르기도 했죠. 


https://youtu.be/mwPR9UeRy4Q


영화의 후반부. 율리에의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을 순간을 겪고난 후, 율리에는 저 멀리 작별을 고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Otto의 Solêr가 이 고요한 순간을 머금고 있는데요. 영화의 후반부 설정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누구라도 말없이 하늘을 지긋이 응시하며 감상에 젖젖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jSpcjxVfn-4


영화의 마지막 챕터, 영원한 것은 없지만 우리의 인생은 계속되고 순간순간의 선택만큼은 진심을 다해왔고 다해야 한다는 율리에의 견고한 심지를 담아내고 있는데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브라질 보사노바의 명곡 Aguas de Marco를 Art Garfunkel이 "Waters of March"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비가오는 날이나, 마음의 정리가 필요할 때 항상 찾아드는 노래라서 더욱 반가웠는데요. 포르투갈어가 아닌, 영어로 드는 노래는 조금 더 침착한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아트 가펑클의 목소리에 따른 영향이겠지요. 이 엔딩 장면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께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곡을 따로 들어보시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리셨으면 좋겠습니다. 결단의 순간이 필요할 떄마다, 이 노래를 들으시며 마음을 차분히 정화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https://youtu.be/fxfpTTIkN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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